오직 직관과 텔레파시만이 살아남으리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찾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지의 장소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 여행은 그렇게 낭만적으로 시작되지만 어쩐지 우리의 여행은 편의점에서 산 일회용 칫솔처럼 가볍고 소모적이어서 여행이 끝나고 나면 그 개운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일회용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무 감정도 없이 서로 데면데면하다가 곧 그 기능을 마치면 영영 헤어지는 것이다. 여행을 마친 뒤 오히려 허무함과 상실감이 커지고 응급약을 찾듯이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자기 칫솔도 없이 일회용 칫솔을 전전하는 꼴이다. 무자비한 싸구려 칫솔에 잇몸이 상하고 충치가 생겨 고통스러워지는 데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우리가 ‘편의점’에 간다는 것이고 거기서 ‘일회용 칫솔’을 산다는 것이다. 그 획일적이고 갑갑한 장소에서 행복과 낭만이 손에 잡힐 리 없다.
이번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그런 갑갑함을 느낀 적이 많다. 비싼 돈 주고 여행 와서 실패하기 싫은 여행객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행까지 와서 실패 한 번 해보지 못 하는 그 가련함은 어쩔 것인가. 나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깨달은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여행에 실패라는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경험들이 쌓일 뿐이다. 날씨가 최악이라면 최악이라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고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우연히 들린 옆집이 나만의 맛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은 이런 돌발상황과 무질서와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져야만 낭만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여행에는 무모함과 용기가 필요하고 여행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 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다.
여행을 떠났다면 인터넷에서 얼굴도 모르는 블로거들이 아니라 자신의 직관을 따라야 한다. 유난히 마음을 끄는 장소를 택하거나 아니면 동선에 맞춰 그에 맞는 여행지를 대충 고르는 것도 좋다. 그 우연성이 또 다른 우연을 낳고 그 절묘한 무질서들 중에서 남들과는 다른 경험, 다른 사진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만의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여행에서 돌아온 일상에서 더욱 빛을 발해 오래도록 여운을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일회용으로 끝나서 일상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다듬어 가면서 일상을 풍부하게 해주는 장인의 손길 같은 것. 나중에도 꺼내보고 더듬더듬 기억해내면서 그때의 기억에 흐뭇해지고 손때 묻은 경험에서 또 색다른 진리를 찾아내는 것.
엉또 폭포가 보낸 텔레파시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동행인의 강력한 직관에 따라 '엉또 폭포'로 향했다. 마치 엉또 폭포로부터 텔레파시를 받은 사람처럼 동행인의 주장이 강력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엉또 폭포는 일정 강수량이 넘어야 흐르는 건천 폭포라서 폭포수를 볼 수 없을지도 몰랐고 그 날은 아침부터 우박과 눈보라가 번갈아 몰아치다가 햇볕이 내리쬐는 정신 이상의 날씨였지만 그래도 어쨌든 눈이 흩날렸으므로 아주 희미한 기대를 가지고 엉또 폭포를 찾았다.
눈이 폭폭 나리는 날씨였다. 산 구석에 아담하게 숨어있는 엉또 폭포는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폭포수가 흘러야 할 자리야 맨살을 드러낸 절벽만이 멀뚱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로를 당황한 채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여기에서 흐르게 될 폭포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었다. 장마철이 되면 저 절벽에서 얼마나 호방하고 힘차게 폭포가 떨어질까. 내 상상 속에서 폭포가 하얗고 웅장하게 떨어졌다.
폭포를 보러 갔다가 폭포를 보지 못 했는데도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않은 것은 그 아쉬움이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엉또 폭포가 흐르지 않은 것도 폭포의 잘못이 아니고 하필 비가 오지 않는 날에 폭포를 찾은 것도 나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날에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만큼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엉또 폭포가 나의 마음에 유난히 각인된 것은 엉또 폭포 옆에서 무인 산장을 관리하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었다. 폭포수를 보지 못한 여행객의 마음을 달래려는 듯 산장에는 장마철에 웅장하게 흐르는 폭포수의 동영상과 함께 양심적으로 돈을 내고 사 먹을 수 있는 다과가 마련돼 있었다. 산장은 엉또 폭포에 꼭 어울리게 아담하고 아늑하게 지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판매하는 다과들 역시 욕심 없이 소박해서 몰래 공짜로 가져가겠다는 사심조차 생기지 않았다. 산장을 혼자 지키고 있는 작고 겁 많은 개 역시 엉또 폭포의 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제주의 자연경관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서 웬만해서는 사람의 손길과 어울리지 않는다. 울타리나 동상, 경비실 조차도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게 소극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곳이 바로 제주도인 것이다. 하지만 이 무인 산장은 엉또 폭포와 어울릴 뿐 아니라 이 곳의 매력을 한층 사랑스럽게 만들어 준다. 자연경관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 자연과 어울리는 소박하고 흐뭇한 정서가 아닐까. 아름다운 자연에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조화롭고 편안하다.
여행의 그런 순간
인간은 좀 사디스트적인 부분이 있어서 고통 후의 행복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폭포를 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행에는 돌발사건과 난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당시에는 스트레스로 괴롭지만 그 일이 지나고 나면 그 격렬한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이 즐거운 기억으로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 가학적인 느낌의 이유는 바로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네비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탐험하느라고 앞이 진흙길 인지도 모르고 가다가 그만 자동차 바퀴가 진흙탕에 처박히는 곤경에 처했다. 주위는 아마존 밀림이 떠오를 정도로 낯설고 축축한 식물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은커녕 길 하나 보이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세계의 밑바닥에 갇혀버린 절망감이 속수무책으로 밀려오면서 어떻게든 이 위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시시각각 우리의 여행이 닳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차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바튀는 진흙탕에서 헛돌 뿐이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진흙을 파내고 나무껍질을 바퀴 밑에 바치고 차를 밀어 보면서 애쓰다 보니 우리도 차도 진흙 투성이가 되어가고 계속되는 실패에 점점 지쳐갔다. 영원히 이 진흙탕에 갇혀버릴 것 같은 아득함이 몰려왔다.
물론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가장 쉬웠겠지만 왠지 우리 힘으로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그 오기조차 점차 진득해지는 진흙 속에서 구정물 투성이가 됐을 때쯤, 우리는 기적적으로 진흙 늪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퀴가 단단한 바닥을 굴러간다는 것이 그렇게 상쾌한 기분일 거라곤 그 전엔 미처 몰랐다. 드디어 바퀴가 자유로워지고 멀리 보이는 도로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나갈 때 우리의 피는 뜨거워졌다. 우리 힘으로 세계의 밑바닥을 헤쳐나왔다는 동질감과 자신감,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진흙 투성이가 된 못난 손으로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눌 때, 나는 인생이 소중한 경험 하나가 쌓였다는 것을 알았다. 진흙탕에 처박히더라도 내 힘으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와 그리고 이 낭만의 섬 제주도에서 나만이 겪은 에피소드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며 이야깃거리 삼을 수 있겠다는 뿌듯함이 생긴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127시간>이 떠오른다. 그랜드 캐년을 여행하던 아론은 실수로 바위틈에 손이 끼고 그 상태로 혼자 자신의 손을 짓누르는 돌덩이와 127간의 사투를 벌인다. 그야말로 우주적이고 세계적인 절망의 늪에 빠진 것이다. 온갖 시도가 실패하고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한 순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아론은 생각한다. 자신의 손을 짓누르는 돌덩이는 수백만 년 동안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자신 역시 그 돌을 만나기 위해 여태까지 살아왔음을. 아론은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선택이 이 돌덩이를 만나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아론과 돌덩이는 아주 우연히 만난 것 같지만 사실은 온 우주가 둘의 만남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론은 필사적인 노력 끝에 결국 그랜드 캐년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아론이 그 후에 느낀 모든 것들은 그 돌덩이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다. 돌덩이는 아론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그 만큼의 삶의 소중한 비밀들을 일깨워주었다.
이번 진흙탕 사건을 겪으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진흙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고. 그리고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으로 나를 괴롭히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깨우쳐주려 했다고. 여행의 묘미는 유명 관광지만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다채로워질 수 없다. 나는 세계문화유산도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낯선 진흙탕 위에서 배웠다.
나만의 돌덩이를 찾아서
우리의 돌덩이도 어디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위험할 수도 있고 절망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를 용감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무모한 짓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직관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의 돌덩이가 보내는 텔레파시를 감지하기 위해 우리는 예민해져야 한다. 얼굴로 모르는 블로거들의 여행기를 답습하면서는 밋밋하고 일회적인 재미밖에 느끼지 못 한다. 그렇게 되면 관광지는 그저 관광지에서 끝날뿐 나만의 여행지가 되지는 못한다.
여행지 못지않게 당신은 여행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당신의 선택으로 오늘은 동쪽으로 갈 수도 있고 서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 안에서 퍼져 나오는 직관으로 끊임없이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는 돌덩이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의 여행은 풍부해지고 낭만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어떤 관광지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여행.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제주도에서는 전파 사용을 금지하는 것.
어떤 정보도 없이 오직 자신의 직관과 텔레파시만을 믿고 따라갈 것.
모두가 자신만의 여행을 할 것.
그래서 자신만의 돌덩이를 찾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