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할 때 ‘풋풋한 첫사랑 영화'라고 설명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내 설명을 듣고 상대방은 첫사랑의 달콤함, 찰나성, 미숙함 같은 것들을 떠올릴 텐데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무엇이 구체적인 단어로 잡히지 않아서 “이건 극장 가서 봐야 해.”라며 상대를 설득했지만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영화가 주는 여운,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몇 개의 리뷰를 찾아봐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엘리오’와 ‘올리버’의 아름다움과 이탈리아의 강렬한 햇빛, 그리고 진한 복숭아 향기에 취해서 이 영화를 제대로 분석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한 동안은 그 세계로 들어가 현실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으니까.
며칠 동안 영화의 잔상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처음에는 복숭아 향이 진동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장면들만 떠올랐다. 오랫동안 만족스럽고 꼼꼼하게 그 아름다운 장면들을 되새긴 후에야 엘리오와 올리버의 심리를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그때 엘리오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올리버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따져보며 두 캐릭터의 밀당을 흐뭇하게 곱씹고 나니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로맨틱하지도 않지만 내게 줄곧 말을 걸어오고 있던 장면들. 영화를 두 번째 관람할 때에야 내가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토리 전개상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인데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들은 그 속에 숨겨져 있었다.
영화의 오프닝은 세월의 상흔이 남아있는 고대 조각상의 이미지들이다. 미소년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 조각상을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소년의 사랑을 성적으로 암시하며, 관객들에게 동성애적 사랑을 보여주기 전에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엘리오가 기가 막히게 ‘다비드적’인 미소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오프닝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고대 조각상은 영화에 영상미를 더하고 분위기를 잡으며 우아함을 부여하기에 좋은 설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조각상은 에로티시즘의 역할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역할은 엘리오의 아버지가 끊임없이 과거의 단서들을 해석하는 고고학자라는 것에서 확장되기 시작한다.
왜 엘리오의 아버지를 고고학자로 설정했으며, 아버지와 올리버가 벌인 첫 논쟁에서 일반 관객들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파생에 관한 에피소드를 선택했을까. 나는 아버지와 올리버가 ‘살구 주스’에서 시작된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복잡한 연관성에 대해 논쟁할 때, 그 의미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던 장면이었다. 아마도 그 장면에 이 영화의 목소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제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첫사랑을 추억하는 영화가 아니다. ‘해석’에 관한 영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고학자는 과거 사람들이 남긴 유물을 해석해야 한다. 그들이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부식된 조각상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단서를 찾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자칫 잘못 해석해서 고고학자가 과거 사람들을 오해하게 되더라도 그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이해하려는 고고학자는 언제나 신중하고 사려 깊어야 한다. 바로 그 사려 깊음은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은 바닷속에서 건져낸 조각상에서 옛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바로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지만 타인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언제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에 단서를 숨겨 놓는데, 그걸 해석하는 일은 그 사람에게 관심 있는 자들의 몫이다. 떠올려보면 올리버가 남긴 수많은 단서들이 있었다. 아직 타인과의 관계에 미숙한 엘리오는 올리버의 단서들이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해서 괴로워한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 한 줌과 말 한마디, 손짓 하나는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우리는 타인이 보낸 사인이 정말 사인이 맞는지, 사인이 맞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고고학자처럼 타인의 보내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해석’의 영화이며 ‘관계’에 대한 영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나는 밤에 자려고 누워서 사람들을 해석하려고 애쓰는 일이 많다. 내가 타인의 사인을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서 그런 ‘야근’을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어서, 그 사람을 누구보다 제대로 알고 싶어서. 그 사람이 보낸 사인을 놓치거나 오해했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하나 더 들자면, 엘리오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다.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은 어느 공주와 기사의 러브스토리인데, 책이 독일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을 해주면서 책을 읽는다. 먼저 독일어로 낭독한 후에 영어로 번역을 하는데, 그중에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가 있어서 무슨 말로 옮겨야 할지 난감해하던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어머니가 입 속에서 독일어를 굴리면서 무슨 말로 번역해야 할지 생각할 때, 그 단어를 가장 적합한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바로 그 노력이 내가 타인에게 뭔가를 전하고 싶을 때 하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각각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인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언어로 쓰여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적합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전하려는 사람은 자기가 전하려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해야 하고, 그걸 해석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 해석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기본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끝없는 노력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사랑스럽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서 말을 고를 때. 나를 너에게 온전히 번역해주기 위해 신중히 말을 고를 때. 네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드디어 입을 열고 말을 할 때.
두근두근. 그런 긴장감과 설렘이 이 영화에 있다.
너무 마음에 들었던 영화라서 두서없이 썼지만 누군가는 잘 해석해주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