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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Oct 31. 2015

음식님 찍을 땐 기다려

작가 생존기



"가서 메뉴 골라야 하고, 음식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음식이 나와도 또 네가 사진 찍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 배고픈데."


배가 고프면 이성을 잃는 헌이다. 배고픈 걸 견딜 수 없어서 식당에 가는 도중 군것질을 해버리는 타입의 남자다. 허기가 강할 때면 얼마나 본능적인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진다. 정말 아무 계산도 생각도 느껴지지 않는 본능과 식욕 그 자체.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다. 인간들이 아무리 똑똑한 척 해봤자 이렇게 생존 욕구가 강할 때는 동물과 똑같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걸 일부러 숨기지 않는 헌의 단순함이 좋다. 헌이 배고프다하면 정말 다른 아무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픈 것이다. 어떤 인간들은 시간을 얻기 위해, 과시하기 위해, 체면을 위해 일부러 배고픈 척 하거나 배부른 척 할 때가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데 타인을 배려한답시고 스스로를 혹사시킬 때가 종종 있다. 어쨌든 타인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일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체면과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이다. 난 체면과 예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헌이 배고파할 때 나는 작은 쾌감을 느낀다. 이제 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모든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순수하게 식욕을 채우는 모습을 보게되겠구나 싶어서. 나는 대게 타인이 밥을 먹는 모습을 좋아하지만 특히 헌이 밥먹을 때가 좋다. 저렇게 동물적으로 순수하고 열심히 먹을 수가. 그 모습에 한눈이 팔려서 상대적으로 나는 깨작거린 적도 많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식욕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을 즐긴다. 식욕보다는 소통을 위한 도구로써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음식이 맛있으면 맛있어서 화제가 되고 맛없으면 맛 없는대로 화제가 된다. 대개 식사 예절을 지키면서 점잖게 식사하는 분위기로 흐른다. 이 경우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동물이 아니라 고상한 인간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인간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야기 하며 밥을 먹는다는 것. 소개팅이나 상견례같은 불편한 자리라면 가시방석이겠지만, 가족이나 친구 등 편한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행복한 식사가 될 것 같다. 나는 이런 식사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단순히 나누면 동물적인 식사와 문화적인 식사라고 나눌 수 있겠지만 나는 우열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동물적인 식사는 생기가 넘쳐서 좋고 문화적인 식사는 교감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친다면 괴로울 것 같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떨 때는 미친 듯이 허기를 채우면서 한 쌍의 돼지가 되고 싶고 어떨 때는 밥 먹다 말고 이야기를 하느라 문을 닫아야 하는 식당 주인에게 쫓겨나고 싶다. 어쨌든 밥 먹을 때 정답은 없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는 일에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식사 시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음식 사진을 찍으려고 밥을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페이스북에 수많은 음식 사진이 올라오지만 맛있는 것도 자꾸 먹으면 공허하다. 가끔 끔찍하게 맛 없는 집에 가는 것도 같이 간 사람과의 추억이고, 너무 맛있어서 사진 찍는 걸 까먹은 맛집이 진정한 맛집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가끔 음식 사진만 찍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찍지 않았다는 것이 서글퍼진다. 나는 음식 전문가도 아닌데 왜 자꾸 카메라를 너가 아닌 음식에 들이대고 있는 걸까. 오늘 헌의 푸념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대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음식이 아닌 것이다. 헌이 이제까지 음식사진을 찍는 나를 기다려 줬듯이, 나도 음식이 나오면 바로 해치우고 싶은 헌의 식욕을 이해해줘야 겠다. 항상 마음에 새기려고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 


참지 못하고 결국 사진을 방해하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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