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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Nov 05. 2015

위생도 취향이라고

가난한 작가의 위생상태


동생과 이마를 맞대고 아침을 먹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사다. 밤 사이 허기가 적당히 달궈진  상태인 데다가 실패한 메뉴를 먹더라도 아직 저녁이나 야식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또 하루 동안 쓸 에너지를 보충할 거란 핑계로 많이 먹더라도 죄책감이 덜하고 무엇보다 집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아침에 기분이 좋은 편이다. 아침형 인간이라고 하기엔 내 기상시간이  어처구니없이 늦지만, 그래도 아침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다가 해 질 녘엔 급격하게 체력이 꺾이고 새벽이 오면 거의 좀비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아침을 느긋하고 기분 좋게 보내고 싶다.


오늘의 메뉴는 아침의 고요함과 담백함과도 잘 어울리는 계란말이와 두부부침이었다. 아침에는 이런 순한 음식을 좋아해서 만족스럽게 먹고 있었는데 동생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볼 일을 마치고 손을 씻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나오던 할머니가 동생의 눈에 딱 걸린 것이다. 평소에 깔끔쟁이로 통하는 동생은 기겁하면서 할머니한테 잔소리를 했다. 손도 안 씻고 밥을 먹을 거냐는 둥, 그런 식으로 반찬도 만들고 밥도 하면 어떡하냐는 둥. 밥을 그만 먹을 것도 아니면서 밥맛이 딱 떨어졌다는 투로 투덜거린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 역시 보통은 아니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러려고 했다는 식으로 싱크대로 걸어가더니 툭툭 손을 씻는 것이다. 동생의 분노는 폭발한다. 화장실 다녀온 손을 싱크대에서 씻으면 어떡하냐고. 


동생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손을 씻든 안 씻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할머니가 오성급 쉐프도 아닌데 할머니한테 완벽한 청결을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큰일을 치른 것도 아니고 잠깐 소변을 봤을 뿐이다. 음식을 만드는 중도 아니었고, 상을 다 차려놓고 수저를 들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온 것이다. 그럼 손을 씻지 않았더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는데, 나는 동생이 너무하다 싶었다. 아니 그리고 솔직히 말이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볼일을 보고 화장지로 뒤처리를 하는 편인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더러움이 생겨나는지 모르겠다. 공중화장실에서도 손을 씻지 않고 그냥 나가는 여자들이 종종 있는데, 그런 여자들을 경멸스럽게 바라보는 여자들이 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불결하다는 것이고, 그리고 왜 남의 불결함을 사서 경멸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각자에게 맞는 적정 몸무게가 있듯이 각자에 맞는 위생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 개개인의 면역력이 모두 같지 않을 텐데 왜 똑같은 위생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한다. 위생도 취향이라고. 그러니까 남의 위생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 여기에도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나는 원래부터 청결한 편은 아니다. 중학교 시절 심각하게 중2병이 찾아왔을 때 나는 내가 왜 매일 머리를 감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내 머리를 안 감는 것이 남에게 피해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안 감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반에서 꽤 이슈였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런 편이다. 지금은 샤워한 후의 청량감이 좋아서 자주 씻는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바디워시나 샴푸의 거품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은 어차피 야생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일 텐데 화학약품을 써서 인공적으로 청결하게 만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요새는 천연 샴푸바를 쓴다. 이건 그나마 폭력적인 느낌은 덜하다.


내가 위생에 무딘 것은 어쩌면 다행이다. 가난한 작가가 항상 청결과 위생을 지키기란 힘드니까. 깨끗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시간도, 노력도 필요하다. 나는 개인위생에 돈이나 시간, 노오력을 들일 생각이 전혀 없긴 하지만, 나는 일반인들과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생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나는 지나치게 깨끗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두둥) 적당한 세균이 있어야 면역력도 생기는 거다. 나는 나를 깨끗하지 않게 관리하면서 면역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씻고, 상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웬만한 유통기한은 무시한다. 비빔국수 속에 빠진 날파리를 다시 찾을 수 없을 때는 그냥 보양식이라고 생각하며 먹는다. 그러니까 나는 '나빠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죽진 않겠어'를 선호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적당한 세균에 내던져 면역력을 키우면 나중에 잔병으로 병원 갈 일이 적어질 거라고 믿고 있다. 당장 밥 한 끼 먹는 것도 무서운데 병원비 낼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기 때문이다. 억울해서라도 건강해야 한다. 거친 음식도 먹고 적당히 더럽게 살면서 야생답게 살아야 한다. 


가난하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일이 또 하나 늘었다. 귀찮아서 씻기 싫었으면서도 저는 가난해서 면역력을 키워야  합니다,라고 비장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 같은 것을 포함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먹을 수 있는 먹이의 범위가 넓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상위 잡식성'인 것이다.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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