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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l 04. 2016

인생을 상의할 사람이 없어진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이십 대의 샐린느가 그런다.




난 이미 할머니이고
지금은 그 할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난 항상 할머니인 내가 지금의 나를 회상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지금의 내가 실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니고

미래의 내가 기억 속에서 소환해내고 있는 것일 뿐이라면 어떨까?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관계없이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인생이 어떻게든 결판이 났을 테니 후련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되었을 미래의 나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지금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느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점점 인생을 상의할 사람이 없어진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선배나 직장 상사들도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들도 그들의 인생을 사느라 버거워서 잠깐 애송이 앞에서 주름을 잡아본 것에 불과했다는 걸 안다.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경험자들의 조언이 요긴하긴 해도

인생의 거대한 물음표를 상의하기에는 우리 모두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인생 초짜 들일뿐. 


한 배에서 나고 자란 형제들도 점차 자기 살 길을 찾아가고 친구들도 멀어져 간다.

패잔병처럼 축 늘어진 내 인생을 안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물어볼 사람도 없고, 물어본다고 해도 시원스런 대답을 듣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각자 티켓을 들고 공연장의 자리를 찾아 사라지는데 

나는 내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내 티켓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 떠나가버린 황량한 로비에 나 혼자 서서 외로워한다.

내 공연은 언제 시작되는지, 혹은 영원히 준비 중인 걸까.


지금 이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락가락하는 미래의 내가 떠올리는 찰나의 기억일 뿐이라면,

얼마나 하찮은 물음인지 알면서도 그래도 묻고 싶다.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되는지.

내가 물어볼 사람은 오직 너뿐이라고.

나는 내가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의 나는 인생이 길다 하고

미래의 나는 인생이 짧았다고 할 것 같다. 

서로 남의 속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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