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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n 27. 2016

혼자하는 여행의 의미(2)

여행의 소득


안동에 도착해서 카페에 앉아 제일 먼저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했다. 조건은 상업적이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일 것. 요새 밤마다 파티가 열리는 게스트 하우스가 유행이라지만 그것도 혈기왕성한 젊은이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 나처럼 체력이 저질인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을 여럿 만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이제는 파티고 뭐고 피곤하고 그냥 괜찮은 사람 한두 명과 매실차 마시면서 수다나 떨고 싶다. 인생의 재미란 것이 언제나 파티나 술집 같이 왁자지껄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나처럼 조용하고 한적한 재미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맹렬한 검색을 통해 찾은 게스트 하우스는 지난 5월에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직접 한옥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상업적이지 않은 따뜻한 친절함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짐을 풀고 기력을 회복한 뒤, 신세동 벽화마을에 올랐다. 



나는 신세동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벽화마을이 많이 생겨서 새롭진 않았지만, 이 달동네만의 언덕의 가파름, 시간이 느릿느릿 가는 구멍가게, 정다운 고요함 같은 것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꾸불꾸불한 달동네를 헤집고 다니다가 길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할머니 다섯 분과 마주쳤다. 외나무다리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좁은 길이라 내가 지나가려면 할머니 몇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얼마 전에 이화동 벽화마을의 소음이 싫었던 주민이 벽화를 모두 없애버린 일이 떠올라서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살금살금 지나가는데 왠지 할머니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늦게 돌아다니면 무섭지 않으냐, 혼자 여행 왔느냐, 할머니들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되자 한결 편안해지는 마음. 내친김에 할머니가 주신 삶은 감자를 먹으며 그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역시나 내 나이를 밝히자 얼른 시집가라는 안타까운 조언들이 쏟아졌고,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는 제안까지 나왔다. 할머니들 시대에는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겠지. 이 분들은 어디 어디를 여행해 보셨을까. 그 할머니들의 발길이 닿지 못 했던 곳, 그분들이 가보고 싶었던 곳은 어디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라서 조금은 쓸쓸하다. 누군가는 유렵과 동남아를 다녀올 시간에 나만 한국에 붙박이로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내 시간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 내 일상은, 어쩌면 어딘가를 여행했을 수도 있었던 아까운 시간이 돼 버린다. 자꾸만 오늘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이 드는 것은 내가 자꾸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여행을 자주 다녀온다고 해서 인생의 씁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여행이 끝나고 난 뒤에 허무함과 허탈함이 커지기도 한다. 어쩌면 여행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인생 대부분을 채우는 일상이다. 일상의 지루함이다. 여행의 절반 넘는 시간도 지루함을 견디는 일이다.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순간은 금방 지나간다. 즐거움이 지나간 후에 오는 것들... 그걸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여행은 피곤하고 힘들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것들에 베팅해야 한다. 한옥의 불편한 잠자리에서 새벽까지 뒤척이면서 나는 내가 왜 여행을 왔을까 자문했다. 무엇을 얻으려고? 내가 이번 안동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라곤 내가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고작 소득은 그것뿐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엄청난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혼자일 때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해왔다. 그래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여럿이 함께 있을 때 괜히 불편하다고 생각했고,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건 내 머리가 만들어낸 감정이고, 사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 모양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딘가에 혼자 있을 때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했는지. 이제껏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스스로의 틀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많이 놓쳤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았더라도 덜 외롭고 덜 힘들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혼자를 선호했던 것은 고독을 즐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을까 봐 혼자를 자처했던 것뿐이다. 



내 열쇠 하나를 풀었더니 나의 많은 비밀들이 풀린다. 나는 혼자 사는 걸 못 견딜 것이고, 앞으로도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를 맺고 싶으면서도 관계가 끊어질까 봐 주저하는 마음을 잘 다독여서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궁리해야 할 것이다. 아, 나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편안해진다. 나는 혼자이고 싶을 만큼 쿨한 사람이 아니고, 지지고 볶고 싸울지언정 끈적끈적하게 사귈 수 있는 이웃들이 필요한 사람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성향의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 모두 자연스럽게 이런 성향으로 바뀌는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렇게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번의 힘들었던 여행도 어떻게 보면 성공이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역시 밥은 여럿이 먹어야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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