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 원인은
지진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핑계를 대느냐고 묻는다면
지진 말고는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꾸 헤어짐의 이유를 묻는 애인에게
이것저것 애인의 단점이 싫어졌다고 설명하긴 했지만
뒤돌아서면 그것들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기묘한 사실을 발견한다
왜 헤어지고 싶은지 설명하는 일은
왜 지금 지진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일만큼
부질없고 비과학적으로 우주적인 일이다
어쩌면 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분야가
연애뿐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천재지변 앞에서 나는 너무 무력하고
취직과 결혼 같은 인간의 중요한 단계에서도 나는 쓸모없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고작 애인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일까
정말로 확실한 것은 모르겠다
지진이 일어났고 모든 것이 흔들려서 불안해졌다
너와 이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국 지진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