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개월 동안 드라마 초고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아이템 개발을 돕기 위해
현직 작가 한 명과 감독 두 명을 멘토로 붙여주었다.
나는 세 명 중 나에게 도움이 될 법한 멘토 두 명을 선택해야 했다.
이미 한 자리는 자유분방한 미혼자 감독으로 점찍어두었지만
다른 한 명을 누굴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무난한 선생님 같은 감독과 괴팍한 성격의 작가 중에 저울질하다가
괴팍한 작가를 선택했는데 잘한 건지 모르겠다.
그 작가에 대한 첫인상도 별로였고,
그 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골질 하는 장면도 직접 목격했음에도 저지른 선택이었다.
예전에 내가 소심이었을 때는 기가 세고 나랑 잘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일부러 피해 다녔는데
언젠가부터는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사람과 부딪쳐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그 오만방자함을 내가 꺾어보고 싶은 묘한 충동과
일부러 스스로를 나쁜 상황으로 몰아넣어 그것을 돌파해보고 싶은 모험심,
한편으로는 나한테 만큼은 못되게 굴지 못 할 거라는 오만한 마음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상한 사람들한테 끌린다.
착하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람들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들, 피해의식과 자기 방어로 벽을 쌓은 사람들이 재밌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저 난해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상처가 있을까.
그 약점을 건드려서 무너뜨리는 방법은 뭘까, 혹은 내가 치유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복합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서
주위에 마이너들이 많은 것 같다.
모든 것이 건강한 사람들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색한 건강함을 연기하게 되는데
그런 부자연스러운 내가 싫어서 그런 관계는 힘이 든다.
아마 나도 이상하고 병적이고 마이너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겠지.
옆에서 내 말을 듣던 친한 작가의 촌철살인.
"자꾸 그런 식이면 그런 사람을 만나 고생한다. 여자는 뒤웅박 팔자."
나도 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평강 공주' 신세를 면치 못 하리란 것을.
연민과 호기심으로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 왜 자꾸 약하고 악한 사람에게 끌리는지 나도 모르겠다.
마음이 하는 일은 이론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