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말끔하게 소진하고 싶었습니다.
권태에 짓눌리는 하루 말고 생동감 넘치는 하루가 되도록 말이에요.
아침에 먹는 사과가 유난히 아삭아삭 맛이 좋았고
아침밥을 먹고 난 자리에서 읽은 러시아에 관한 책도 흥미로웠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소탈하기도 하고 화끈하기도 한 것이 우리와 닮았더라니까요.
러시아만큼 추운 날씨지만 오늘 하루를 몽땅 써버리려면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어요.
엄마와 동생을 일으켜 가까운 '길상사'를 찾았습니다.
하얗게 눈으로 덮인 사찰 풍경이 마음에 꼭 들었어요.
깊은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는데, 스님들을 마주칠 때마다
겨울잠 자는 반달곰을 깨우지 않으려는 것처럼 조용히 속삭여야 했죠.
길에는 쌓인 눈이 얼고 녹아서 식혜에 동동 뜬 살얼음 같았는데 그걸 밟는 맛이 기가 막혀요.
아득아득 밟는 소리도 중독성 있고요.
처마 밑에 매달린 투명한 고드름도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 같았습니다.
고드름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이렇게 함부로 깨부셔 보는 건 얼마만인지요.
'침묵의 집'이라는 작은 방에 들어갔더니 휑뎅그렁하게 방석만 놓여 있습니다.
벽 쪽을 보고 조용히 명상을 하면 된다는 안내문이 있길래 그렇게 해보았어요.
명상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내가 무릎 꿇고 앉은 쪽은 문창살이 있는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의 정다운 모양,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 내 명상의 전부입니다.
몸이 추워져서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세 모녀가 둘러앉아 차를 마셨어요.
엄마는 찻값이 비싸다고 하고 나는 요새 찻값이 다 이렇다고 하고
어쨌든 차와 디저트는 내가 쏜다고 했더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은 이렇게 뿌듯한 순간들 때문이겠죠.
우리 대화의 주제는 벌써 다음 명절, 추석에 가 있습니다.
긴 연휴를 틈타서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고 싶거든요.
일인당 백만 원은 든다는 말에 동생이 꼭 해외여행을 가야 하냐고 울상을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엄마를 모시고 일본에 갔다가 통장을 탈탈 털린 것 같아요.
나는 농담 삼아 이번이 온 가족이 해외에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동생을 설득하려고 짓궂은 농담을 한 건데 엄마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거예요.
우리 자매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안 맞아서 다 같이 못 갈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모아둔 내 돈을 털어서라도 가족여행을 추진해야겠어요.
분명히 아빠와 막내 동생 새끼가 함께 가는 해외여행은 끔찍하겠죠.
덥고 싸우고 문제가 생기고 서로 비난하고 따로 행동하고... 그런 거요.
그래도 온 가족이 "야 여기 좋다", "야 이거 맛있다" 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그 한 순간,
그 한 순간을 위해 떠나는 것 아니겠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가족이 생각날 때마다 꺼낼 볼 수 있는 그 추억 하나 때문에 말이에요.
집에 와서 세 모녀는 카페에 앉았던 순서대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무슨 힘든 노동을 하고 온 사람들처럼 숟가락을 부딪쳐가며 개운하고 맛있게 먹었어요.
꼭 마지막 몇 숟갈을 남겨두고 세 모녀가 배불러 죽겠다고 넉다운이 되죠.
결국 나머지는 엄마의 몫이 되고 "이래서 자꾸 배가 나온다니까"하는 엄마가 좋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하루를 무엇으로 소진할까 하다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에 아직 보지 못한 <공기인형>을 보기로 했습니다.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영화가 좋고, 이야기의 절반 정도만 예상되는 영화가 좋아요.
이렇게 흥미진진한 영화를 발견하면 러닝타임이 줄어드는 게 안타깝죠.
영화를 보고 나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누군가를 만지고 싶어 지네요.
내가 모질게 굴었던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요.
젊어서는 나와 꼭 맞는 사람이 없어서 애가 타지만
늙어서는 그저 만질 수 있는 누군가만 옆에 있다면 괜찮은 거겠죠.
하루를 모두 탕진했습니다.
돌이켜보니 행복했던 순간들로 가득하네요.
여러 가지를 느끼고 깨달은 것도 좋고요.
아, 오늘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손에 잡힐 것도 같았어요.
그렇게 좋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