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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Feb 11. 2017

몸이 아프면


며칠 동안 속이 쓰려서 고생했다.

뭔가를 먹으면 식도부터 목구멍 바로 뒷부분까지 타오르는 것 같았는데,

그러면 안 될 걸 알면서도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그 후에는 아주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귀찮다고 병원 가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은 덜 아픈 것이다.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끌려갔다.

그래, 고약하고 못 돼 처먹은 식도가 나를 끌고 병원에다 패대기친 것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당분간 자극적인 음식과 과식, 야식을 피하라는 권고는 그러려니 했지만

위내시경을 받아보라는 말에 조금 겁이 났다. 

서른 하나는 위내시경 검사로 시작되는구나. 

이번에는 너덜너덜하게 지친 모양의 위가 나를 위내시경 검사대에 눕혀 놓는다. 



아파진 몸을 헤집기 전까지, 자기 몸이 다른 사람의 몸과 비슷할 뿐 아니라

정육점 고기들과 비슷하다는 걸 인정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지금보다 더 오만했을 때에는, 내 사고의 깊이가 남다른 만큼 내 몸도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내 척추가 고스란히 보이는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얼마나 놀랐던지.

피부염에 걸려 가려움의 끝장을 경험했을 때는 어떤가.

그렇게 점차 나도 남들처럼 징그러운 뇌와 내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한번 망가지기 시작한 몸은 회복이 어렵다는 것과

병원에서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점 몸이 나의 주인이 되어 간다. 



내 팔에 놓는 것이, 수면약일까 프로포폴일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뿐인데 한 시간이 지나있고, 검사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져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약물 하나에 이 지경이 되다니, 내 몸도 의학 앞에서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이 배신감은 뭘까. 



모니터에 보이는 시뻘겋게 번들거리는 저것이 내 식도와 위였다. 

쟤들이 화가 나 있는 건가요?

그렇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기관이 내 몸안에 들어서 하루 종일 작동하고 있다니.

두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움직이는 건가요. 어떻게 살아있는 건가요?

앞으로 화가 난 쟤들을 달래면서, 왜 살아야 하는 건가요?

선생님은 별문제는 없으니 앞으로 커피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조심하라고 한다.

당장 커피가 필요한 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면에 빠져있었던 내 잃어버린 한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이 들어서 더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을 노인들을 생각한다.

저 노인들도 망가져가는 육체를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막막한 두려움, 새로운 고통의 감각,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절망감,

병원의 무관심, 수술실의 냉기... 모든 것을 견디면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나도 고통이 일상이 되는 그런 시기가 찾아오겠지.

한번 아프고 나니 모든 것에 대한 연민.

조금 더 부드러워지라고 몸이 한 번씩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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