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운동 멤버 중에 오십 대를 바라보는 한 언니는
집을 사려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빚을 갚았다고 한다.
빚만 갚으면 후련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빚이 사라지고 나니
너무나 허무해서 빚이 있는 것만 못했다고 한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희생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을 것이고,
인생 자체의 고단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집을 장만했다고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별로 없다.
오늘의 탄핵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디즈니 동화처럼 후련하고 완벽한 결말은 현실에는 없다.
나쁜 놈들이 벌을 받는 것도 영화적이고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앞으로도 지리한 상황이 계속되리란 직감,
탄핵의 기쁨에 즐겁다가도 문득 서늘해지는 건 그동안에 쌓인 패배의식 때문일까.
오늘 해가 떠있을 때까지만 해도 무척 기분이 좋았는데
해가 지고 밤이 되니까 울적해지고 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까.
세월호를 비롯해서, 무수한 인과관계로 얽혀 원인도 모른 채 고통당해야 했던 사람들.
아마 우리 국민 중 누구도 그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바다와 배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 기억들.
힘겹게 밝혀낸 악의 실체는 너무나 하찮고 더러워서 허탈하고 허무하다.
허탈하고 허무하다.
공공의 적을 물리치면 흥겨울 줄 알았는데
너무나 마음이 헛헛하다.
이 텅 빈 마음이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오늘 하루만 울적해하고
내일부터는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와 같은 감정에 빠진 사람들 모두 그렇기를 바란다.
내일부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