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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Apr 14. 2017

한 번도 젊지 않은 적이 없어서

feat. 오지은

요 며칠 이상한 기분이었다.



쓸모없는 것에 내 시간과 정력을 몽땅 소비하면서 

멈춰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매일매일 다른 가수에 빠지고 

다른 노래에 빠지고

아무도 읽지 않을 단편 소설을 몇 날 며칠 공들여 쓰고

영양가 없는 만남일 줄 알면서도 그저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를 망치고 나를 별 볼일 없게 만들고

아무것도 먹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자꾸 나한테 불량한 자극을 주면서 유혹하고

다른 편의 나는 그게 나쁜 줄 알면서도 기꺼이 유혹에 빠진다.

왜 건강한 길로 돌아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

어디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나를 끝까지 망치고 싶은 기분.

다음 날이 되면 허무해서 죽고 싶어 지면서 

그걸 매일 되풀이하는 것이다.

쓰레기처럼 살고 싶다가 쓰레기도 못 되는 사람이라 허무해진다.


보통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기분 전환을 하거나

적절한 예술작품들을 만나서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심지어 채우고 싶지도 않다.

다 흘러가버려도 좋고, 다 망가져도 좋고, 다 끝장이 나도 좋아.

마치 뭔가 끝장 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만큼.


처음에는 외로움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을 만날수록 커지는 구멍.

외로움이랑은 좀 달랐다.

요새 나를 사로잡는 것들은 잠깐 나타나다가 사라지는 것들.

젊은 몸에 새겨진 문신이라던가

피땀 흘려 썼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글과 표현들,

허무하게 떨어지는 꽃잎들,

계속 반복되는 똑같은 노래,

그리고 아주 잠깐의 찰나로 빛나는 사람들.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보니까

하나같이 아주 잠깐 선명하게 빛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왜 이런 것에 집착했을까.

그래서 또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일 년 전인가 읽었던 

오지은의 에세이집 [익숙한 새벽 세 시]가 떠올랐다.


정말 불현듯이 그 구절들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시작은 어디였을까. 3집을 내기 전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앨범을 만들 때의 내 마음은 장송곡을 만드는 기분과 흡사했다. 정확하게 무엇이 나를 떠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나의 세계가 천천히 회색이 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말하기 낯간지럽지만 청춘이었다. 푸른 봄, 잎사귀가 돋아나고 꽃망울이 터지고 땅도 공기도 생명력으로 가득 차는 시기.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 타이밍에 없어질 줄은 몰랐다. 





딱 그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청춘의 내가 나를 떠나가고 있었다.

그걸 내 어느 부분이 알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이별 준비를 해온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청춘과 이별해야 하는 나와,

청춘을 보내고 싶지 않은 내가 충돌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한 번도 젊지 않은 적이 없어서

앞으로 젊음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겁이 난다.

더 이상 젊지 않아도 살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묻고 있고

나는 딱히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그냥 저 영원한 사춘기의 공원에서 영원히 망가져 가면서도 죄책감이 없고 싶다.

청춘일 때는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 하나의 재미인데

청춘이 떠나고 나니까 나를 망가뜨리는 데 자신이 없어진다.

놀이가 진지해지면 재미가 없는 거야.



내가 청춘과 이별하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무섭게 떠나가는 청춘의 나. 

아직 보낼 준비가 하나도 안 됐는데

그 어떤 연인보다도 잔인하게 떠나는 나.


진덕 진덕 하던 우울의 원인을 한순간에 각성하게 돼서

글에 두서가 없지만, 

결국은 젊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투정이라는 걸 알겠다.


어떻게 보내줘야 하는 건가.

다들 어떻게 보내줬을까.

젊음 없이,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내일부터 나를 어떻게 봐야 하나.

여전히 울적하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유별나고 청승맞다고 생각할 뻔했지만

적어도 오지은 한 명은 이 길을 앞서 걸어간 걸 확인했으니까다 행이다.

정말 오지은이 있어서 다행이다. 

고마워.

뭔가 두서없지만, 그냥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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