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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n 16. 2017

다른 사람의 조언



인생이 이런저런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주위 사람을 찾게 된다.

특히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인생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명쾌한 해답을 주기를 바라게 되는데

자꾸만 나는 그 '조언'이란 것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어쨌든 '착한 인생 후배'는 아닌 것이다.


이번에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이것이 악마의 계약인지 아닌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제작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인 작가에게 쉽게 오지 않는 인생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워낙 작가를 착취하는 회사가 많다 보니

제작사의 말만 믿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배 작가에게 계약서를 보내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선배 작가로부터 즉시 무섭고 엄중한 조언들이 도착했다.

계약서는 제작사에게만 유리하게 작성된 것이며

이대로 계약했다간 푼돈을 받으면서 제작사에 얽매이게 되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게 될 거란 말들이었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갑자기 사람 좋아 보이던 제작사 사람들이

나를 착취하려는 새우잡이 배 선원들로 보이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노예 계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선배 작가는 당장의 생계유지비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는

아까운 시간과 노동력만 허비하게 될 거라고 했다.

주위의 아는 작가들도 나를 걱정스러워하며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다.

해답을 얻기 위해 조언을 받으려고 했는데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문제는 나는 자기 확신이란 것이 부족한 인간이고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는 것이다. 


주변의 조언들에 휘둘려서

제작사에 계약을 철회하겠다는 메일을 보내고

가슴이 두근두근.

이렇게 했던 말을 번복하는 것이 어른이 할 짓인 걸까?

나는 어른인 걸까?

그런 생각들로 울적해서 나를 망쳐버리고만 싶었다.


당장 제작사의 소환이 있었고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피디들 앞에 앉았다.

또 피디들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다른 작가들의 우려처럼 나를 착취하려는 의도도 아니었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피디들의 말을 들으면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심장이 흥분으로 두근거렸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계약하겠다고 질렀다.

결국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은 셈이다. 


내 인생인데 

내가 아무리 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한다고 해도

타인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을까.

마음이 불안해서 누구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중대한 결정들 앞에서 어떤 것이 나에게 유리할지 따져보았자

미래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고

당장은 잘못된 선택 같아 보여도 전혀 다른 결과가 될 수도 있으니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자 소용없다.

시간을 두고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결정에 대해 나의 직감이 어떠한지를

나에게 조용히 물어봐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다른 어른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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