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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n 26. 2017

인정해야겠지


세상에 진심이란 게 있기는 할까.

나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절반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 웃어 보이는 사람이

속으로는 무슨 속셈이 있는 걸까, 헤아리면서

겉으로는 웃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연극이 시작되고 

나도 입에 발린 말, 진심 없는 진심이 늘어간다.


세상 모두가 나를 속이려고 거짓말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영원히 마음 둘 곳은 없는 것 같아서

자꾸만 나를 망치고 싶은 유혹에 휘둘리고 있는데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멍청이처럼 사람을 잘 믿고 잘 웃고

시시한 일에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었던 과거의 나는

그만큼 사랑을 받고 있었던 거였다.

든든한 내 편이 있었으니까 뻔뻔하게 멍청할 수 있었나 보다.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고,

혼자여서 오히려 자유롭고 좋다고 

큰소리 뻥뻥 쳐 놓았는데

이제 어쩌냐.


애인하고 헤어지면 

죽겠다고 질질 짜는 친구들을 한심해하면서

좋은 사람 깔렸다고 대충 위로해줘 놓고

이제 와서 내가 질질 짜는데 어쩌냐.


예전에 나에게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너도 나중에 뼈에 사무치게 외로운 순간이 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별로 외로움 타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비웃었는데.


왜 나이 많은 오빠들이

술자리를 구구절절 늘이는지

술 먹고 전화해서 후회할 말들을 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찌질해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만 얻으면 다 해결될 것 같고

그래서 여기저기 덤벼보는 것이다.

정말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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