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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l 11. 2017

사람을 죽인 개의 입장


어떤 개가 자기를 키워주던 할머니를 물어 죽였다고 한다.


누군가는 개는 위험한 동물이며 산책할 때는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인간의 친구였던 개가 갑자기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짐승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큰 개를 보면 조심하라는 말에

그 할머니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개가 주인을 물었을까?라고 답했다.

이 물음 때문에 나는 한순간에 인간의 배반자가 되었고,

무책임한 동물 애호가가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개가 얼마나 솔직하고 착한 존재인지를.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을 죽일 수 있어도 개는 아니다.

개가 사람을 물어 죽였다는 사실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개의 입장이 있을 거란 얘기다. 





할머니는 요즘 이상해.

자꾸 냄새가 나는 밥을 주고 가끔은 밥 주는 걸 잊기도 해. 

이 외로운 산골에서 할머니랑 십 년 넘게 같이 늙어가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야.

끔찍이 아끼던 손주들이 놀러 왔을 때도 내 밥을 잊은 적이 없거든.

요즘 할머니한테는 아픈 냄새가 나. 

하루는 멍하게 풀린 얼굴로 마당을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아다니길래 

관절 수술을 받은 무릎에 무리가 갈까 봐 걱정이 됐어.

집으로 들어가 쉬시라고 내 몸으로 할머니를 밀었지.

평소에는 힘을 쓰지 않지만 나는 마음만 먹으면 땅에 박힌 목줄을 뽑을 수도 있고,

할머니를 끌고 집으로 모셔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때리는 거야.

주먹으로 치고 손에 잡히는 빗자루며 막대기로 호되게 때리기 시작했어.

왜 맞아야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

사람은 가끔 이유 없이 화를 낼 때도 있고 나한테 분풀이를 하기도 하니까.

할머니는 지금 아파, 그러니까 나한테 응석을 부리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를 억지로 밀어서 의자에 앉혔어.

컥, 하고 기침을 했더니 피에 이빨들이 섞여 나왔어.


그런데 오늘, 

할머니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게 앉아만 있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목이 마르다고 했어.

나한테 손발이 있다면 차가운 물이라도 떠다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 그건 위험한 물건이라고 했잖아요.

내가 가까이 가서 냄새만 맡아도 기겁을 하던 그 약통.

몹시 목이 마르다고 고함을 치던 할머니가 그 약통 뚜껑을 열고 마시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깜짝 놀랐을지 생각해봐.

나는 있는 힘껏 달려가서 할머니를 밀쳤어.

할머니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는지 이마에 피가 나고 있었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 정도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나는 반항도 못 하고 꼼짝없이 매질을 당했지.

오늘은 운이 나쁜 날인가 보다, 그렇게 체념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할머니가 약통을 들고 마시려 하고 있는 거야. 

나는 할머니한테 뛰어들었고 할머니랑 몸싸움을 벌였지.

할머니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할머니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 그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컹컹 짖고, 하지 말라고 할머니 손을 물어서 떼어놓는 대신

할머니, 그건 위험한 거예요, 하고 말할 수 있었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럴 수 없었어.

십 년이나 인간들과 살고 인간들의 남은 밥을 먹었지만 

인간의 말을 할 수는 없었어.

나는 할머니를 위험에서 구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할머니를 물었던 거 같아.

나도 짐승이라고, 할머니가 나를 죽일 듯이 때리니까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물었던 것 같기도 해.

내 앞에서 할머니가 피를 흘리면서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어.

그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어.

할머니, 미안해요, 그 말은 안 나오고 나는 당황해서 코를 핥고 빙글빙글 돌기만 했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거칠지만 애정이 담긴 손으로 나를 쓰다듬어 주던 우리 할머니를.

외로운 밤에 서로의 친구가 돼 주었던 숱한 시간들을 나는 배반해버리고 말았어.

할머니가 끝내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할머니를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서

몸을 붙이고 그 옆에 누웠지.

그동안 고마웠다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내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나는 왜 인간들이 자살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어. 

나 같은 짐승들은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지.

내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자기가 죽으면 나도 같이 묻어달라 할 거라고, 할머니는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지금 내 유일한 소원도 그거예요.

할머니랑 조금 더 오래오래 있는 것.

그동안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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