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세 Jul 16. 2017

그깟 멍청이



두 달간 가짜 사랑을 했다.

어쩌면 날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날 좋아하게 되면

나는 꽤나 가치 있고 괜찮은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불안하고 가느다란 관계가 깨질까 봐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내가 나이지 않았던 날들.

그의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미친 날들.

평소에 추구하지 않던 스타일을 시도하고

내 평범한 얼굴을 원망하고 

그저 맞다고, 네 말이 맞다고 고개만 끄덕거리던 바보 같은 날들.


나는 정말 이 지경까지 왔어야 했을까.

어제 아주 간단한 카톡 한 줄로 

이 자극적이고 무의미하고 거짓 투성이인 관계가 끝나고 나서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것이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따뜻하다는 천진난만한 믿음 같은 것.

웬만하면 사람을 잘 믿고 따르는 순진함 같은 것.

그동안 몰라서 지나쳤던 무서운 사람들,

날카로운 거짓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꽃밭인 줄 알았는데 사방이 낭떠러지라 주춤.


친구들한테 털어놓았다.

사실 욕먹을 까 봐 너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어.

나도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나 봐.

내 소중한 친구들은 

왜 그랬어, 멍청한 년아, 

하지 않았다. 

사람이 홀리면 다 그렇게 되는 거야, 괜찮아

했다. 

내 동생은 자기가 스물다섯에 겪은 걸 서른 하나에 겪냐고

홍역처럼 한번 겪고 마는 거라고,

갑자기 세상은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걸 가슴 저리게 느꼈다.


혼자 있게 되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친구랑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속이 불편할 걸 알았지만 감자탕을 먹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몸속 가득하게 따뜻한 걸 채우고 싶었다.

몸과 마음에 이는 냉기를 모두 몰아내고 싶었다. 

배부르게 먹고 졸음이 쏟아질 때까지 수다를 떨다가

그를 생각할 틈도 없이 나를 재웠지만

일상의 틈에서 자꾸 튀어나오는 그 사람.

모두 몰아내고 싶다. 


두 달 간의 일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그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미련한 나.

객관적인 일로 들었다면 내가 미친 듯이 욕했을 사연의 주인공이 나였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

거짓인 걸 알면서도 좋았어. 


그때의 내가 너무나 싫어서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당장 오늘부터 처참하게 망가진 나를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한다.

왜 너는 당해봐야 깨닫니,

상처투성이인 나에게 위로랍시고 달콤한 케익을 사주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보냈다.

어쨌든 이것도 다 지나서 과거의 일이 될 거야.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그리고 앞으로는 함부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지 말자.

아무리 멍청한 짓을 한 사람도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었을 거야.

외롭고 힘들었을 거야.

공감은 못해도 비난은 하지 말자.


그러면서 내일도 따뜻한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짓 사랑에 너무 데어서

사랑은 영화와 소설 속에만 있다고 믿게 된 나를

어떻게 위로해 볼까 궁리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죽인 개의 입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