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을까
진실을 둘러싼 수많은 소음
진실은 굉장히 빈번하게 왜곡이라는 옷을 껴입는다. 왜곡되어 거짓이 된 진실을 누군가는 진실로서 맹신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의문을 품는다. 물론, 어떠한 현상과 사건을 바라볼 때 겉을 둘러싼 두터운 표피를 관통하여 이면의 진실을 바라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때로는 진실을 거짓으로 치부해버리기도, 때로는 거짓을 진실로 숭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것을 100% 진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 대상 자체에 대한 진실을 가려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 대상에 대해 판단하는 나조차도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맹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은 세상에 드러나면서 수많은 정보들을 함께 파생시킨다. 그 정보들에는 우리가 노이즈(noise)라고 말하는 쓸모없는 정보들 역시 섞여있다. 이 소음들이 진실을 가리고 거짓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소음들을 진실된 정보라고 확신하고 사회 전반에 전파하는 개인 혹은 집단들이 존재하며, 여기에 현혹되어 숭앙하는 지지자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진실'이라고 믿기 위한 증거로 작용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 정보들을 생산해낸 주체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물며 가치판단과 개입에 엄격한 과학계에서도 여전히 진실과 거짓을 헤아리지 못한 논쟁들이 많은데 누군가의 주관과 가치판단의 개입이 자유로운 정보들을 어떻게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진실과 거짓을 둘러싸고 있는 정보들 중 소음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면 결국 그 이면의 진실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보는 개인과 집단 등 특정한 주체에 의해 굉장히 높은 확률로 가치가 개입되어 전파된다. 전파된 이후로도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각과 가치가 개입되며 퍼져나간다. 결국 대다수는 그러한 정보들 중 '진실로 믿고 싶어하는 것'들을 진짜라고 믿고 그렇지 않은 것은 소음으로 걸러내 '진실'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편향적으로 긁어모은 정보들을 뭉치고 뭉치며 이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들에겐 그 믿음이 곧 진실이며 믿음의 존폐를 위협하는 것들은 거짓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그들의 진실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지점이 굉장히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진실 그 자체는 인간의 어떠한 가치도 개입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진실이라 불리는 것들은 하나같이 가치가 개입되어 있다. 그 모양새는 마치 다수의 믿음으로 인해 존재하는 관념과도 같다.
진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것들의 이면에 진짜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라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증거들, 정보들부터 객관적인 진실로 판명할 수 없다면 결국 그것은 진실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일 뿐이다. 즉, 내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들은 사실 진실이었으면 하는 것들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정보 속에서 그럴싸한 것들로 구성한 하나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 행동 양식 등은 태어난 시점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 공동체로부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틀렸다고 확신하고 비난할 수 없다. 정작 틀린 것은 당신이 믿고 있는 그 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