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 많이 느끼는 것인데,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은 비슷한 사회적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간혹 서로의 현재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원인이 누군가의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지적인 부분에서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서로가 여태껏 살아온 행적이 다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적된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누군가의 언어 등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의 신세에서 벗어나 비로소 드넓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물론 타인의 상황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은 그와 비슷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아왔거나 살아가고 있는 경우에 더욱 극대화된다. 보편적인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비슷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서 상황과 맥락은 중요하다. 이를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사회적 자본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상황들과 우리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사회적 좌표들이다.
그러나, 만약 동일한, 내지는 누군가에게 근사한 상황과 맥락과 좌표를 공유하지 못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또 다른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의 핵심은 그들의 경험을 철저하게 타인의 경험으로, 즉 타자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의 경험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이며 만약 그것이 결여된다면, 깊은 사회적 관계는 형성될 수 없으며 대화에서 서로를 향한 공감대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시 OO구 OO동이 아니다. 나는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태양계의 지구라는 푸른 행성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현재, 내가 위치한 사회적 좌표이며 이러한 사회적 좌표를 인지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봐야만 지금 내가 속한 곳이 단순히 어떤 대학교, 어떤 회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의식적으로 내가 이 공동체의 한 요소라는 생각을 곱씹어봐야만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형성하는 관계들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저 가느다란 선 하나가 연결돼있다고 사회적 관계라고 부를 수 없다. 그 가느다란 선만으로는 우리가 '관계 맺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완벽한 이해와 공감은 불가능하더라도 서로가 처한 상황과 사회적 맥락들, 더 나아가 나를 비롯한 우리의 사회적 좌표를 인지하고 수용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