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눈을 뒤덮자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바라는 세상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았다. 일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이제 그 첫 번째 꿈이 정말 코 앞에 다가왔다.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온 그동안 내 눈은 언제나 내가 아닌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세상은 내게 있어서 결점 투성이었고 치료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물론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열망은 나날이 커져만 갔고,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한 유희 거리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세상의 결점을 보완하고 이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일조하는 것'. 그것이 내가 긴 시간 동안 방황하며 구체화한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었고, 앞으로도 결코 바뀌지 않을 신념이다. 이십 대 전반 동안 해왔던 경험들은 오로지 저 명제 하나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로 수년 전의 나라면 불가능했을 것들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 신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려놓을 수 없고 저버릴 수 없는, 과격하게는 광기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다. 왜 그렇게까지 저 명제에 매달리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직간접적인 수많은 경험들과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 학문적 지식들, 그리고 목도해온 수많은 불합리들과 실제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가지게 된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지지한다.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에 눈이 가려버린 안타까운 괴물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위한 신념에 지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단 한 번이라도 '미쳤구나'라는 말로 재단되어본 그들의 꿈을 좋아한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맛에 스스로에게 취해 오만이라는 안대로 눈을 가려버리고 오로지 높은 곳만을 좇는 인간상을 지양한다. 돈과 권력, 높은 곳에 대한 갈망은 그저 더 높은 곳을 끊임없이 탐하게 만들 뿐이며 결국 그 탐욕은 끝없는 추락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정말 많이 봐왔다. 신념과 철학이 없는 꿈은 생기를 잃어버린 꿈으로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어떤 꿈이든 거기에는 자신만의 확고한 정의와 의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회색빛 디스토피아이고 내가 바라는 세상은 그저 유토피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고통에 젖은 수많은 절규와 비명이 가득한 이 세상을 그저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외면하고 순응하며 살기엔 성격이 그리 수용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못하다. 눈앞에 사람이 힘없이 축 널브러져 있는 상황을 그저 지나쳐서는 안 되듯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현실을 보라거나 오글거린다며 비웃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얘기들을 간혹 들을 때마다 속으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야말로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념이 눈을 뒤덮자, 사람들을 보는 시각마저 달라졌다. 상대가 누구든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온 역사와 지금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맥락,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오직 그런 것만이 궁금했다. 상대가 대기업을 다니든 공기업을 다니든, 돈을 얼마를 벌든, 그런 것 따윈 궁금하지도 않다. 어떤 신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얼마나 자신의 꿈에 미쳐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액션들을 행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