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송 Jul 16. 2024

바람, 바람, 바람.

5월 11일, 불륜을 알고 상간녀에게 전화를 걸다.














남편은 12월부터 금요일 오후면 배낭을 싸서 나갔고 일요일 밤 11시나 되어야 들어왔다. 나는 남편이, 친구들 만나서 뭔가 속 얘기를 하면서 풀고, 그냥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업계에서 슈퍼루키로 떠오를 만큼 직업적으로 성공하게 되니 앞으로 삶의 목적을 어떻게 세워야 하나. 그게 힘들어 방황하는 줄 알았다. 늘 혼자 술을 마시다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폭언하다 결국 욕으로 마무리 짓고, 그러다 침대에 갈 힘도 없어 앉아서 잠을 자는 추한 모습을 8년 동안 봐오던 나는, 주말에 남편이 없으면 나에게 언제 욕을 또 퍼부을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 차라리 편하기도 했다.



주변 지인들이 말했다. 그런데 혜송, 남편이 돈을 주지 않는다는 거는 되게 이상한 거야. 음? 그렇긴 한데.. 우리 남편은 원래 짠돌이니까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좀 이상하게 집요한 부분이 있으니 그 부분만큼은 포기를 못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10명 중의 8명이 다 남편이 바람이 났다고 나한테 은연중에 에둘러 표시를 해줬는데 나만 멍청하게 모르고 남편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우리 남편, 그럴 사람 아니에요. 에이, 무슨 소리야~ 바람은 아닌데? 친구 만난다잖아. 친구 만났겠지. 해외여행? 혼자 다녀온다잖아. 혼자 다녀왔겠지. 근데, 친구들이 12월부터 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네? 어?








내가 남편에게 얼굴을 처 맞은 후, 대학시절 굉장히 아꼈던 후배의 남편이 변호사라 통화할 기회가 생겼다, 남편이 12월부터 집을 나간다고 한마디 하니 그분은.. "XX" 바로 단어를 뱉으셨다. 스읍. 좀 이상한데? 이분은 변호사가 직업이다. 어마어마한 케이스를 접한 사람이고 시간이 돈이며 분석력이 높은 사람이다. 근데, 내가 아주 일부분만 말을 했는데 왜 바로 저 단어가 나오는 거지. 하 참 희한하네. 우리 남편은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다. 그냥 우리 남편은 방황하는 중인데. 8년 동안 책 읽는 꼴을 못 봤는데 요즘 두툼한 책도 한 권을 벌써 절반 이상이나 읽었고, 집안일도 안 하던 사람인데 막 8년 만에 애들 밥도 하고.. 물론 내 빨래는 던져버리고 치사하게 지 빨래랑 애들 빨래만 개 놓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 달 하고 때려치우고, 또 안 하기 시작했고. 평일은 물론 주말에, 한 달에 한 한 번도 애 기저귀를 갈지 않지만. 일단 가장 큰 변화는 내 앞에서 술 안 마시잖아. 아니, 계속 술 먹고 폭언하고 욕하던 사람이 술을 안 마신다니까?



저 인간이 술 안 마시는 거는 진짜 지구가 뒤흔들릴 만큼의 큰 변화인데. 나 너무 편해. 언제 돌변해서 욕 할지 모르니까 24시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내면소통>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책도 보잖아. 사람이 진짜 이번 기회에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 와중에 힘들어하는 거야. 내가 잘 기다리면서 지켜봐 줘야지. 근데 나는 몰랐네. 그게. 하 참, 상간녀가 읽던 책인 줄. 술보다 불륜이라는 더 큰 자극과 중독에 취해 나를 속이며 연기하고 있었다는 걸. 







네이버를 켜고, 외도전문상담소를 검색해 제일 신뢰가 가 보이는 곳에 전화를 했다. 답변. "100% 여자 있다" 아 변호사고 뭐고, 다들 나한테 왜 이래 진짜. 우리 남편 바람 난 거 아니라니까? 근데 이 사람들 전문가들인데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유튜브에 < 이런 모습 보이면 100% 남편 바람 > 에 왜 그가 다 해당하는 걸까? 아, 이상하네. 이상해. 그냥 다 혼란스럽네. 뒤돌아 생각해보면 몰랐던 내가 너무 빼박 등신이었다.



물론 해외 연수 갔을 때 약속한 거, 돌아오면 애들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어주기로 했던 거. 당연히 안 하고 크리스마스/이브 때  잠수 타서 나 혼자 연휴, 아니 뭐 6개월 내내 주말 포함 독박육아 했지. 해외 간 2달은 어땠냐고? 애들 안부 묻기는 커녕 내가 거는 영상통화 한 번 제대로 한 적 있나, 인터넷이 안 터진다 하더라고. 난 또 믿었지. 귀국하면 둘째랑 매일 키즈카페 가기로 했었는데 아내인 난 그가 한국에 언제 입국한지도 몰라, 잠적했거든. 그러다 자기 엄마 뒷구녕에 쫄쫄 붙어 찌질하게 집에 들어왔지.



왜 저러나 했다. 남편은 한국에 온 후 원래도 개복치인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렸을 거다. 아뿔싸, 돌아오고 나니 수습 안 될 사고를 너무 많이 쳤음을 직면했기에. 그냥 잘못했다고 빌지, 그 때 잘못 인정하고 정리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잖아. . 심지어 둘째 첫 생일. 그 날, "첫 돌"이니까 케이크 하나 사다 달라 했는데 그것도 안 사와서, 어.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 날 우산도 없이 비 다 맞으면서 뛰어가 핑크색 케이크 사와서, 그 새끼 앞에서 젖은 생쥐 꼴로, 보란듯이 초 꽂고 애들이랑 같이 생일 축하 노래 부르긴 했지.



근데 바람 핀 건 아닌데.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다 집에 없었긴 했지만 원래 태생이 쪼잔한 새끼라 나랑 지금 대화 거부 중이잖아. 아, 물론 한 달 거의 4주 없었긴 했어. 요즘 향수도 사고 외모에 관심이 늘고, 심지어 자기 물건도 원장실에 옮겨두고 택배도 학원으로 시키긴 했..? 아, 씨이이이발. 럽스타그램. 이게 있네. 남편의 비공개 계정에 올라온 럽스타를 봤다. 나는 약 10년 동안 남편의 사진 찍는 앵글을 아는 사람이고,  남편이 찍은 사진이 아닌 게 있다. 나는 안다.










이 피드를 보고 나는 생각했다. "뭐지?"



넘기면서 생각했다. "뭐지?"















초 하나가 켜진 딸기 생크림 케이크. "이상하다" 생각했다. 왜냐면 내 전남편이 될 사람은 약 10년 동안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자기가 골라서 사먹어 본 적이 없으니까. 왜냐면, 생크림 케이크 안 좋아한대. 늘 투썸플레이스에서 딸기가 올려진 초코 케이크를 먹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홀 케이크를, 남자 혼자 사서 초 꽂고 먹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사진 구글링 해보니 국립중앙도서관? 엥? 뭐야. 8년 동안 책 읽은 적 없는 인간이 대체 여길 왜 가. 도서관은 늘 나 혼자 다녀왔고. 얜 도서관에 갈 이유가 없는데?


케이크를 확대해보니 상표가 나왔고, 검색해보고 지도에 표시를 했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도 지도에 표시했다. 도보 15분 거리에 남편 동종 업계 학원 딱 하나 나오네. 응, 이번에 전남편 될 새끼랑 같은 기간에 해외 연수 갔다 온 년. 이 년 학원 옷걸이가 우리 학원 탈의실에 갑자기 생겼고, 얘 수건이 학원 원장실에 숨겨져 있었지. 내가 그걸 본 다음 그 새끼가 원장실 문을 잠그기 시작했어. 근데 얜, 저기, 어. 우리 애들을 직접 안아 준 적도 있고, 심지어 해외에서 다 같이 잠깐 영상통화 한 적도 있잖아.







아.. 근데 이 년.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존나 좋아하네?








나는 알 수 있었다.


남편 앞에서 더럽고 냄새나는


보지를 짝짝 벌리는 년이,


어. 바로 네 년이구나.













전화를 걸었다.


























이전 04화 비련의 남주인공인 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