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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송 Aug 06. 2024

2010년의 작업노트 3

보물창고 오픈(3)











- 6월 1일     


  9시 전에 나왔다. 돌과 밑부분의 고목이 전혀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아 그 부분을 그렸다. 꼼꼼히 그리기 시작하니, 꼼꼼하지 않으면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꼼꼼하게 시작했으면 끝까지 꼼꼼히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데다 복잡한데 그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다. 마치 밑의 돌 부분에 구부러져 있는 나무는 소나무와 활엽수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 속에 갇혀버린 한 사람의 모습의 형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나무들이 흙도 없어 보이는 돌에 뿌리를 두고 힘들게, 힘들게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큰 돌에서는 큰 나무가, 작은 부분에서는 작은 나무가 나왔다. 가장 밑의 고목은 마치 흙이 정말 없어 보이는 돌 틈에서 힘겹게 자라나 지금도 힘겨워 보였다.     


  그리면서 중심부의 곧은 나무와 매우 비교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는 군신관계나 사람 삶의 비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춘도 원본에서 빈 공간은, 그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 자국을 내야 한다는 교수님 말씀에 물 자국을 냈다. 전에 100호 부여풍경을 배접했던 것, 다른 배접한 그림들의 물 자국을 생각해면서 은은하게 우려내려 노력했다. 배접을 한 후의 그림 색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 여러 부분들에서, 붓을 멈추고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 6월 3일     


  집과 집 위 옆 산을 그렸다. 생각보다 잘 되었지만 여전히 진한 먹으로 사고 쳐놓은 부분과 다른 부분이 조화롭게 어울리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번 진하게 칠해져 버린 먹의 톤 때문에 주변을 어느 정도 진하게 만들기 위해 연한 먹을 계속 쌓았으나, 진하게 한 부분까지 같이 진해졌다. 어울리지 않았다. 해결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진한 먹과, 어우러져야 할 부분을 같이 칠하지 않고 따로따로 사이를 메꿔주고 연한 먹으로 그 위를 덮으니 정리가 되었다. 완벽하진 않아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습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 그럭저럭 기분은 괜찮았다.          






- 6월 4일      


  중심 소나무를 잡아 놓고서 그 주변의 나무들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들을 전부 진한 먹으로 그렸다. 나무 한 개 그리는 데 또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작은 나무인데도 꼼꼼하게 가지 하나하나 똑같이 그리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다가 또 정신없이 그리다 왼쪽 집 밑의 구불구불한 나무에 실수를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생각을 하려고 붓을 몇 시간 동안 들지 않았다.     

 

  다른 그림들이 쌓여 있는데 계속 조춘도 하나에 빠져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귀찮기도 하고.. 되지도 않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만 같았다. 보고 그려야 하는데 그냥 그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고, 그렇게 조심을 하자 다짐했는데 또 사고를 친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햇빛이 쨍쨍한 초록색을 실컷 보고 마음을 식혔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림 앞에 앉아서 다시 붓을 들었다.          






- 6월 5일      


  중간의 숲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뒷부분과 섞여 들어가는 나무라던가, 빽빽해 보이는 숲은 굉장히 신비로워서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공간이 비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무 하나로 연결되고 물자국으로 연결된다. 굉장히 뛰어난 거리와 거리 간의 연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곽희는 어떻게 이러한 배치를 만들어 낸 것일까. 가히 천재다.


  연한 먹을 계속 올리고 올리면서 조금씩 수정했다. 은은하게 잘 우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을 그리고, 밑의 나무를 그렸다. 물결이 없을 것만 같은데 세심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물결은 어떤 파동을 나타내는 것일까? 왼쪽의 물결은 자유롭게 흘러가고, 오른쪽의 물결은 규칙적인 파동이 있다. 화면을 열어 주고, 그 화면이 열렸다가 다시 돌아옴을 알리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의 나무에 선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나무를 좀 더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바위와 왼쪽 하단의 사람 둘을 그렸다. 돌을 진한 선으로 그려 구분하기도 했다. 연한 먹이 너무 쌓이니까 조금 탁해 보이고, 때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배접을 하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연한 먹으로 어느 정도만 그리고 중간 먹으로 묘사를 할 부분은 2~3번 정도만 연한 먹으로 쌓고 묘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색 작업복이 시그니처였던 학부시절의 나








2010년의 작업노트를 보며

2024년, 조춘 시리즈 10점을 계획했고

지금은 그 중 지옥을 그리고 있다.


과거의 작업노트를 참고하며 

신중히 한 점씩 먹을 쌓고 있는데

10년 전의 나보다 용기장천이 되어있는 상태다.


요즘의 내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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