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수 Oct 18. 2021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자잘한 메모부터 긴 일기까지 몇 번을 쓰고 지우고 버렸다. 누가 내 글을 볼까 무서웠다기보다, 내가 쓰는 글을 보고 날 오해할까 무서웠고, 더 나아가 그 오해에 찔려 다시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그 오해란, 쉽게 말하면 "아직도 걜 못 잊었니?" 라던지 "안 그래 보이는데 되게 감성적이네" 혹은 "왜 그렇게 뭐든지 깊게 생각해?" 등등의 비아냥과 각종 평가를 포함한다. 


펜, 아니 키보드를 두들기며 가장 솔직한 나의 무엇을 털어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문득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문가의 '쓰는 일'은 그저 하소연에 불가한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종종 느낀다. 물론 글에도 전문성과 단계가 있다. 하지만 글은 평가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에서 예술가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글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평가는 모든 그 이후의 일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내 생각을 꺼내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말 솔직해지던, 솔직함을 가장하던, 이런 글쓰기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지 혹은 어떤 것이 변화할지 나는 전혀 모른다. 그저 확실한 건, 나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이고 이게 당장 내게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오늘을 살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몇 개나 있을까. 


장황한 설명에 비해 내가 털어놓고 싶던 진심은 소박하다. 나는 향에 예민한 편인데, 아직도 지나가다 만났던 사람의 향수 냄새를 맡으면 당황한다는 거다.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그런 자잘한 걸 기억한다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한번 더 뒤돌아보고 나면 괜한 자괴감까지 덤으로 얻는다. 실제로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한번 있는데, 새로운 사람을 옆에 두곤 날 보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마주친 그날 밤, 집에 가서 분리수거만 1시간은 한 것 같다. 차마 버리지 못했던 편지, 팔찌, 인형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다 모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당시에는 마음 정리하는데 도움이 돼서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진짜 솔직한 이야기. 왜 난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더 힘들어했을까. 왜 다른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했을까. 왜 아직도 다친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할까.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마음이 남아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헤어진 후에도, 날 가두던 그의 말들에 자꾸 걸려 넘어졌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정의했건, 그걸 받아들인 건 나 자신이었다. 왜 그렇게 감정적인지, 왜 그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와 같은 말들은 유리 파편이 되어 그가 사라진 후에도 날 계속 찔렀다. 


그 후로 난 모든 감정적 사고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여전히 말 한마디에 별의별 상상을 다하면서도, 여전히 옆사람 표정을 신경 쓰면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오답인 듯 피해 갔다. 연애는 게임이 아닌데 난 패배했다고 생각했고, 패배의 이유가 나라고 생각했다. 난 그 연애에서 멀어지기 위해 반대로 뛰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내가 나에게서 벗어나려 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쓰기 시작했다. 휩쓸리기보다 흘려보내기 위해. 내 기분에 용기를 한 줌 얹어주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