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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선 Jun 19. 2024

이탈리아에서 일주일

26살 (만25세) 난 아직.

사실상 2024년이 돼서 기억을 더듬더듬 짚어보는 거라 여기 메모장에 쓰는 게 맞는가 싶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항상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냐 물었을 때 대답한 건 이탈리기 때문에 한번쯤 기록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2022년쯤인가 난치성 피부질환에 걸렸다. 팔과 다리에 붉은 색 흉터가 생기며 피부가 다까지는 염증이 생기더니 몇년째 사라지지 않아 여간 골머리 썩는 게 아니다. 요즘엔 대학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으니 좀 낫다만. 그런 시간을 보내다 3프로 TV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있을 즈음, 상명이 형에게 혹시 슛포러브 촬영을 가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냉큼 일을 받아, 다큐멘터리를 진우에게 던져 놓고(죄송합니다 팀장님) 바로 해외로 출국하겠다고 했다.


 근데 이게 웬걸 상명이형 말마따나 호주 여자 월드컵이나 찍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로마로 간단다.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본지 1년만에 이게 유럽을 보내주다니, 말이나 되나 싶다. 그렇게 도착한 로마에선 첫날 이튿날까진 참 정신이 없었다. 처음 만난 영국인 캠은 자기가 찾은 식당에 못가서 화를 냈는데, 영어로 외국인과 그렇게 오래 대화한 것도 처음인데, 화내는 걸 달래야 한다니 참으로 처치 곤란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촬영 때 필요한 박스들을 가지러 로마를 돌아다니게 됐는데, 로마는 말이지 나에게 최고의 도시였다. 굉장히 강렬한 햇빛 아래, 습하지 않아 기분 좋은 태양광을 쐴 수 있으며 사람들은 카페에 늘어져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게 내가 그토록 원했던 평화가 아니었나 싶다. 앞서 피부병 이야기를 했는데, 매일 햇빛을 쐬다보니 피부가 구릿빛으로 타며 발바닥도 말끔히 나았다. 중간에 슬리퍼를 사러 숙소 주위를 좀 걸어다녔는데, 햇빛을 받으며 로마에서 폈던 담배는 참 맛이 좋았다.


 디발라의 촬영날이 다가오고, 어떤 주택에 딸려 있는 큰 축구장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 본 축구 선수가 디발라라니. 정신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촬영의 무드가 참 즐거웠다. 특히 거기 세르비아에서 온 축구 유소년들이 디발라 한번 보겠다고 우리 박스 나르는 일을 도와준 게 기억이 나네. 또, 어떤 애는 자신의 디발라의 열렬한 팬인데, 내게 와서 디발라 사인 셔츠를 줄 수 없냐고 물었는데 주지 못했던 게 참 아쉽다. 내가 좀 더 대인배라면 그냥 줘버렸을 텐데 말이다. 남이 준거라 줄 수 도 없고,,, 동료들에게 그냥 줬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아 참 거기있던 1층 짜리 주택 앞에 있던 큰 수영장의 물 색이 참 예뻤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거기서 수영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런던 참 여러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이탈리아다. 고작 일주일 정도 밖에 안있었지만 이탈리아라는 나라엔 뭔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은 피자 하나 기다리면서 처음 본 사이에도 자연스레 대화하고, 로마의 유적 앞에서 돌아다니는 오토바이 바이커들은 하나 같이 간지 났다. 아, 판테온 신전 근처 로마 시내에 있는 구릿빛 이탈리아인들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처럼 섹시하더라.

커피, 햇빛, 담배 휴식에 필요한 것들을 그런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니. 그래서 이탈리아가 기억에 남나보다.


 이제서야 알겠다. 마음이 불안해질 때 내게 필요한건 바다, 햇빛, 담배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인 거 같다. 오키나와 온나에 있는 이름모를 바다사장에 누워있던 오늘처럼 말이다. 나는 거기서 안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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