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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선 Jun 19. 2024

뭐했노

26살 (만25세), 난 아직.

오키나와행 비행기 안. 옆엔 일본에서 만난 소피아가 자고 있다. 성매매, 포르노와 같은 내 생각엔 평생 남자와 여자가 합의점에 이를 수 없을 것 같은 주제로 시덥잖은 밤을 새다보니 엥간히 피곤한가 보다. 사실 나에게도 죽음같은 잠이 필요하다.

 지금.


 비행기에서 허리를 쭉 피고 팔자좋게 자려다 문득 승무원과 함께 찾아온 우울증에 깨어 메모장을 키게 됐다.(문장이 유치하다.) 최근 나눈 몇몇 대화들로, 마침내 나는 우울증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나열하기만 해도 우울해지니, 그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건 생략하도록하자.


 십 남자 같은 습성으로 나는 언제나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외로움 그런 거창한 원인이었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안엔 거대한 검은 구멍이있다. 구멍 속에 뭐가 빨려 들어간건지 어떤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환장하겠는 건 왜 생긴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담배피다 찍힌걸 지도.


 구체적인 증상이 무엇인고 하면 참 말하기가 어려운 게 아무것도 안한게 증상이다. 근 1-2년간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 도대체 뭐했노. 비행기가 멈추고, 버스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간만에 긴 잠을 잤다.


 잠을 좀 자고 나니 기분이 그나마 나아지는 듯하다. 요즘엔 불현듯 우울증이 찾아온다. 왜 갑자기 나는 멈추었을까? 그냥 피상적으론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유튜브 영상이나 매일 보고있는 게 편하니깐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활을 통해 우울증에 걸렸다면 분명 땅 밑 어딘가에 묻혀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 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문제는 하나가 아닐지도.


 아까 쓰려다 지웠던 문장인데, 쉬워서. 여기서 문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엔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렵다. 어려운 걸 넘어서 부담된다. 왜 그럴까? 이제껏 몇 편의 글을 써봤는데 자신있게 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이 없다. 재능있다고 생각한 내 모습이 무너지고 있는 걸까.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그래서 잘 쓰지 않으면 20살의 친구가 ‘니 잘하는 거 없잖아’하는 모습이 언뜻언뜻 떠올라서 그런게 아닐까? 나는 이걸로 잘될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 같으니깐.


 그럼에도 지금처럼 살다간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20살 많은 형의 말처럼 이 과정에선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 나를 다그치고 싶지도 않다. 그건 압박이니까. 하지만 이 상태에 그만 머무르고 싶기도 하다.


일단 글을 쓰자. 글을 쓰고, 영화를 찍고, 내걸 밖으로 꺼내보이자. 몇 번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레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찾을지도 모른다. 이게 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 별일이 있을까. 그냥 적당한 회사나 프로덕션에 취직해서 그냥저냥 살면되지 않을까. 지금 내 앞의 언덕이 이렇게 높은데 그 뒤의 길이 보이려나. 언덕 넘어에 있는게 무엇인지 난 궁금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병원에 가자. 천천히 옆도보면서 올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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