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장애인 소득보장 제도의 변화 ― 보호에서 권리로

2부. 공공부조로 본 K-복지 20년의 성과

by 햇살마루

장애로 인한 빈곤은 오랫동안 개인이 감내해야 할 삶의 조건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는 주로 ‘보호가 필요한 상태’로 인식되었고, 그 보호는 대부분 가족과 개인의 책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장애로 인해 노동시장 참여가 제한되고, 치료비·보조기기·돌봄 등 추가적인 비용이 평생에 걸쳐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이를 구조적인 소득 문제로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늘 비슷한 사례를 마주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아니지만 실제 생활은 극도로 불안정한 장애인들이다. 가족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혹은 소득이 기준을 조금 넘는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제외되었지만, 장애로 인한 지출은 줄어들지 않았다. 제도적으로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든 빈곤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

기존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던 장애수당은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수급자로 선정되는 과정 자체가 까다로워 많은 장애인이 제도 밖에 머물렀고, 설령 지급 대상이 되더라도 급여 수준은 생활을 지탱하기에 매우 제한적이었다. 무엇보다 장애로 인한 소득 상실을 보전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기보다, 제한적인 범위에서 제공되는 보조적 지원으로 인식하는 한계가 분명했다. 국민연금 역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한 구조상, 선천적 장애인이나 조기에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는 연금 수급에서 배제되는 일이 잦았다. 그 결과 많은 장애인은 일할 수 없고, 국민연금도 없으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아닌 상태로 남겨졌다.


이러한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차상위 장애수당이다. 2007년, 국가는 처음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외에도 장애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 존재함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차상위 장애수당의 도입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장애인의 어려움을 개인의 사정이 아닌, 장애라는 조건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기존 장애수당의 범위를 제도적으로 확장한 첫 시도였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이 수급자 여부로만 구분될 수 없다는 점을 국가가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차상위 장애수당은 여전히 ‘보완적 지원’의 성격에 머물렀다. 급여 수준은 낮았고, 장애로 인해 장기간 발생하는 소득 상실을 안정적으로 보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제도의 대상은 넓어졌지만, 장애인의 삶 전반을 지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장애로 인해 평생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소득이 제한되는 상황을, 언제까지 일시적 수당의 형태로만 감당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결국 장애인 소득보장을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2010년 장애인연금 제도의 도입이었다. 이는 단순한 제도 추가가 아니라, 장애인 소득보장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였다. 장애인연금은 기초급여와 부가급여로 구성되어, 장애로 인한 소득 상실을 일시적인 지원이 아닌 지속적인 소득 문제로 규정했다. 만 18세 이상 중증장애인 중 소득·재산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연금’이라는 명칭에 담겨 있다. 이는 장애인 소득보장을 단순한 보조금 수준에서 벗어나, 사회가 책임지는 제도적 권리로 격상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차상위 중심의 보완적 지원에서, 권리 기반의 공공 소득보장으로 이동한 것이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분명히 체감되었다. 장애인연금은 생계 전반을 충분히 책임지지는 못하지만, 삶의 예측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은 생활을 계획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불안정한 일상을 일정 부분 안정시켰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제도적 진전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가 있다. 2011년 시행된 활동지원은 중증장애인이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돌봄 인력을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이는 소득보장을 넘어, 장애인의 삶을 ‘존재’의 영역에서 ‘참여’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활동지원은 장애인이 가족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권리 기반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장애인 소득보장 제도는 장애인의 삶을 바라보는 국가의 인식을 보여준다. 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나 가족의 부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국가는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상실과 추가 비용을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차상위 장애인 지원, 장애인연금, 활동지원 제도는 각각 분리된 제도가 아니라, 보호에서 권리로 이동해 온 하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장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장애인 복지제도 상담 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보다, “제가 이용할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늘고 있다. 복지는 더 이상 호의나 배려가 아니라, 제도로 확인되는 권리가 되었다.


장애인 소득보장 제도의 변화가 K-복지의 성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과정은 대한민국이 장애를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장애로 인한 빈곤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았고,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삶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임을 인정했다. 수당이 아닌 연금이라는 형태로 소득보장의 위상을 끌어올렸고, 활동지원을 통해 삶을 ‘생존’이 아니라 ‘참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국가는 공공부조를 통해 “장애로 인해 삶이 취약해지는 것을 더 이상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제도로 실현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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