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사람들 ― 복지 사각지대

3부. 공공부조로 본 K-복지의 과제

by 햇살마루

복지제도가 지난 20년 동안 눈부시게 확장된 것은 사실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아동수당, 장애인 활동지원, 긴급복지지원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면서 국가가 책임지는 영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늘 복지사각지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지만 수원 세 모녀 사건, 신촌 모녀 사건, 창신동 모자 사건 등 유사한 비극은 반복되었다. 왜 복지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는가.

복지 사각지대는 단순히 제도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제도의 문턱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 신청했다가 탈락하고 돌아서는 사람들. 사각지대는 제도의 빈틈과 사회적 고립, 그리고 신뢰의 문제까지 얽혀 만들어지는 구조적 결과다.


1. 현재의 사각지대 ― 형태를 바꾸며 지속되는 빈틈

복지제도가 늘어나면 사각지대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각지대가 사라지기보다 형태를 바꾸며 이동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면서 최저선 이하의 삶은 제도적으로 보호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차상위계층’이라는 새로운 층이 드러났다. 기준선 바로 위에 있는 사람들, 수급자는 아니지만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제도는 선을 기준으로 작동하지만, 삶은 선으로 나뉘지 않는다.

긴급복지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지만, ‘행정적으로 정의된 위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제도 바깥에 머문다. 위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행정은 유형화된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간극이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든다.

최근에는 고립된 1인가구, 만성질환자,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처럼 경제적 빈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위기가 늘어나고 있다. 돌봄의 공백, 관계 단절, 채무와 질병이 복합적으로 얽힌 경우가 많다. 소득 기준만으로는 이들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 사각지대는 점점 더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2. 사각지대가 반복되는 이유 ― 제도의 문턱과 삶의 복잡성

1) 제도의 엄격성과 복잡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소득인정액 산정 방식은 일반 시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소득뿐 아니라 재산을 환산하고, 가구 구성과 부양의무자, 각종 예외 규정을 따져야 한다. 신청자는 자신이 될지 안 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요구되는 서류와 증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신청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청했다가 탈락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 해체를 증명하기 위해 제삼자의 확인을 받아와야 하는 경우처럼, 오히려 실제로 고립된 사람일수록 입증이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 제도가 ‘부정수급을 막는 구조’로 정교해질수록, 가장 취약한 사람이 문턱에서 떨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2) 재산 기준이 만들어내는 배제

소득은 거의 없지만 전세보증금이나 기타 일반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실에서 재산은 곧바로 현금화하기 어렵지만, 제도는 이를 일정 비율로 계산하여 소득으로 환산한다. 그 결과 ‘가난하지만 수급자는 아닌’ 비수급 빈곤층이 발생한다. 제도는 공정성을 유지하지만, 체감하는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3) 정보 접근의 격차

정보는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주민들은 “어디에서 봤는데요”, “인터넷에 나와 있던데요”, “누가 알려주던데요”라며 먼저 문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정보에 닿는 것은 아니다. 고령층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고, 이주민은 언어 장벽을 겪는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고 하루 소득이 곧 생계로 이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찾거나 관공서를 방문하는 시간조차 부담이다. 여러 서류를 준비하고 절차를 밟는 과정은 또 다른 장벽이 된다. 정보는 늘었지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디지털 격차는 곧 복지 격차로 이어진다.


4) 전달체계의 분절과 현장의 한계

읍면동 주민센터 내에서도 각 복지급여담당과 사례관리 담당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위기 상황에서 급여의 적합·부적합 판단에만 머물게 되면, 복합적인 위기를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 돌봄, 채무, 정신건강, 관계 단절 등은 단일 급여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 속에서 모든 영역을 통합적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5) 데이터 기반 발굴의 구조적 한계

정부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체납,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연체 등 다양한 정보를 연계하고 있다. 위기 가구 발굴은 과거보다 정교해졌다. 하지만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위기도 존재한다.

주소 이전 없이 떠도는 사람, 아직 연체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생활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 채무를 피해 숨어 지내는 사람들. 위기는 숫자로 환산되기 전부터 시작된다. 발굴 시스템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발굴되지 않는 위기’는 남는다.

여기에 또 다른 한계가 있다. 지금의 위기정보 대상자조차 담당 공무원이 모두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수백만 건의 정보가 각 읍면동주민센터로 쏟아지지만, 연락처가 없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소지를 찾아가도 이미 이사했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상황도 반복된다.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현재의 복지 업무만으로도 현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 기존 복지대상자 관리와 민원 대응, 부서별로 계속 확대되는 신규복지사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매번 내려오는 위기정보 대상자까지 일일이 찾아 나서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대상자를 무작정 방문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되지만, 그 과정이 반드시 위기 해소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위기를 감지하는 정보의 질’이다. 위기정보의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삶이 무너지고 있는 신호를 더 정교하게 포착할 수 있는 데이터, 그리고 그것을 직접 만나고 연결할 수 있는 인력의 보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데이터는 출발점일 뿐, 위기를 해결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발굴 체계의 고도화가 현장의 역량 강화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발굴된 위기’ 또한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다.


6) 신뢰의 붕괴와 ‘스스로 숨어드는’ 사각지대

사각지대는 정보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채무 문제로 공공기관 방문을 꺼리거나, 과거 복지서비스 탈락 경험으로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난다. 수급자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히 존재한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선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약화된 사회의 징후이기도 하다.


3. 사각지대 대응의 한계 ― 발굴 이후의 간극

송파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구축했고, 위기 정보 항목을 확대해 왔다. 최근에는 질병 정보와 채무 조정 실패 정보까지 포함하고, 개인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 위험도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고도화했다. 병원 의료사회복지사와의 연계, 이웃 신고 체계 마련 등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발굴과 지원 사이의 간극을 생각보다 크다.

위기 가구로 선정되었지만 기초생활보장 기준에 맞지 않아 실질적 소득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돌봄 서비스가 필요해 신청해도 대기 기간이 길고, 공급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제도는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행정은 점점 정교해졌지만, 위기의 속도와 삶의 복합성은 그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각지대는 단순히 발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턱과 서비스 총량, 현장 권한의 문제까지 포괄한다.


4. 사각지대 해소의 방향 ― 구조 전환의 필요성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찾아내는 구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1) 신청 중심 구조로의 전환과 기준의 단순화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복지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정 기준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일반 시민도 사전에 자신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득인정액 산정을 쉽게 설명하고, 주요 기준을 대중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는 불확실성이 줄어들 때, 사람들은 문턱 앞에서 돌아서지 않는다.


2) 현장 권한과 재량의 확대

모든 상황을 지침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판단과 재량이 일정 부분 보장되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우선 지원 후 심사하는 방식, 통합사례관리의 실질적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 공정성과 보호의 균형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3) 서비스 총량 확대와 돌봄 인프라 강화

발굴이 늘어날수록 실제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양도 충분해야 한다. 특히 돌봄이 필요한 영역은 경제적 빈곤을 넘어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노인, 1인가구, 만성질환자에 대한 선제적 돌봄 체계 구축 없이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어렵다.


4) 데이터와 지역 관계망의 결합

위기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행정 데이터를 기본 토대로 하되, 위기정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네트워크와의 결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이 보유한 정보만으로는 삶의 균열을 모두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웃, 의료기관, 민간단체 등 생활권 안의 인적 안전망이 촘촘히 연결될 때,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징후와 신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신고는 감시가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돌봄의 요청’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5) 경제적 지원을 넘어 종합 상담으로 관리

복지급여를 연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재정 상태와 채무, 의료 문제, 정신건강, 가족·관계의 어려움까지 함께 살피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위기는 하나의 영역에서 시작되지만, 삶은 서로 얽혀 있다. 문제 역시 여러 영역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 또한 통합적인 지원 속에서 가능하다.

복지 사각지대는 행정의 미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모든 구성원을 충분히 품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제도의 확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기준의 문턱을 낮추고, 현장에 힘을 실어주고, 서비스의 총량을 확대하며,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것은 완벽한 통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 홀로 무너지지 않도록, 문턱 앞에서 돌아서지 않도록, 두려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왜 복지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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