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낙인에서 존엄으로 ― 복지 인식의 변화②

1부. 현장에서 바라본 K-복지 20년의 변화

by 햇살마루

2000년대 초 공공부조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제도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공공부조는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제도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도움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더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 시절 현장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말들이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수급자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알까 봐 신청을 못 하겠습니다.”

“아이 학교에 알려질까 봐 한부모가정은 신청하지 않겠습니다.”

공공부조는 생존을 위한 제도였지만, 동시에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처럼 여겨졌다. 제도를 이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로 받아들여졌고, 그 인식은 개인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공공부조는 개인의 문제로 이해되기 쉬웠다. 사회는 도움을 주는 쪽에 있었고, 받는 사람은 예외적인 존재였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앞섰고, 수급자는 동정과 사회의 관리 대상이 되기 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부조를 바라보는 사회 전체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난은 더 이상 개인의 태만이나 노력 부족만으로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가족 해체, 돌봄 공백과 같은 사회적 위험 속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복지의 의미도 달라졌다. 복지는 ‘왜 저 사람이 도움을 받는가’를 따지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장치로 이동했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일은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것, 부모가 없는 아이라면 사회가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가정환경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노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 없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지막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도 우리는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회적 논의와 정책 변화, 그리고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공공부조는 더 이상 개인의 실패를 보완하는 제도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열려 있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복지를 직접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는 공공부조를 ‘나와는 상관없는 제도’로 여겼다면, 이제는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며, 어려운 이웃의 상황을 설명하며, 혹시 모를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복지제도를 묻는다. 복지는 특정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삶의 조건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함께 확인하는 사회의 장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낙인’은 점차 힘을 잃었다. 공공부조를 이용하는 사람의 존재보다, 그러한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공공부조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끄러움의 표시가 아니라, 사회의 안전망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가 되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도 분명하다. 예전에는 수급 상담 자체를 부끄러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혹시 이런 제도가 있는지 알고 싶다”라고 묻는다. 이는 복지를 특혜가 아니라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사회복지공무원의 역할에도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신청자의 사정을 판단하고 선별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사람이 되었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제도를 알지 못해 제도 밖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 제도를 안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또한 우리의 역할이다. 공공부조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그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연결하는 일은 사회복지공무원의 책임이 되었다.

‘낙인에서 존엄으로’의 변화는 공공부조가 비로소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공공부조는 조용히 작동할 때 가장 빛난다. 누군가 굶지 않고, 누군가 거리에서 생활하지 않으며, 누군가 지역사회 안에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공공부조를 받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공공부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회적 합의이며,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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