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엇이든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백번 낫다.
그게 무엇이든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백번 낫다.
어렸을 적
가장 자주, 그리고 영혼 없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가 아닐까 싶다.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나는 속으로,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요.’하며
나 역시 별 영혼 없는 대답으로 그냥
"모르겠어요." 내지 "없어요."로 넘어간 적이 많았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출신, 학력, 부모의 능력, 지성, 자본, 기타 등등 뭐 하나 충족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나이에 비해
너무 빨리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을 것을 말하고
"꿈이 야무지네."라는 말이라고 들으면
그게 칭찬이 아니라,
마치 비아냥으로 들리는 것만 같아
부끄러움을 가장한 침묵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 긴 했지만 없어진 건 아니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지 말고,
내가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은 것도 선택하고,
실패도 해보고, 새로운 경험도 쌓았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슬슬 들 때가 많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 지 못한다.
남들이 진심으로 칭찬해도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멋쩍게 흘려듣거나,
반대로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하는 입에 밴 뻔한 칭찬을 자신의 진짜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래서 중요한 건,
인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르고, 무엇이 잘 된 건지
아무도 모르니
그게 무엇이 되었든 안 하는 것보다
해보는 게 백번 낫다는 말이다.
(단, 내 목숨만 위협하지 않는다는 조건,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힐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보다
할 수 없는 일을 때로는 지나치게, 때로는 쓸데없이
제외시키는 행동과 선택은
인생에 잔잔함을 주긴 하겠지만
문제는 그게 꼴랑 전부라는 데 있다.
그런데
꼰대 같은 말을 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살기엔
인생은 생각보다
오지게, 드럽게 길다.
남들이 괜찮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주어도
웃어넘기며 내가 뭐라고, 넘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나 있을까. 하며
흘러 넘기기를 몇 년째인 나 역시
이제부터는
뻘쭘하게 웃어 넘기기, "아이고, 아니에요"라고 쓸데없이 사양하기
대신
뭐라도 열심히 써볼란다.
안 써서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하는 글보다
써서 읽히고, 욕먹고 고쳐 다시 태어 나는 글이
백번 낫다고 생각하며.
<언제쯤이면 십원 짜리는 은행 잠입하여 백 원짜리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1980년에 태어난 수많은 10원짜리 중 하나인 나는 백 원짜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나는 십원도 괜찮아요." 대신 "나는 백원이 되고 싶어요"라고 끊임없이 외쳐볼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