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노력’이란 단어만큼 분명한 기준도, 정해진 한계도 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항상 해피엔드를 보장하지 않으며 내 마음이 아닌 오로지 상대의 마음에 따라 노력의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노력의 열매로 허탈감을 얻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상대에 마음에 들기만 하면 노력은 나를 ‘실력 있는 사람’으로 격상시켜주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이 닳도록 노력해봤자 ‘성의 없는 사람’으로 찍히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보아왔지 않은가. 노력은 그 자체로 값지다는 걸 초등 도덕책에서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짠하고 허무한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노력이 갖고 있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노력의 보상으로 사랑을 얻은 사람들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반대로 노력에 대한 보상은커녕 상처를 받거나 모멸감을 느낀 사람들은 쓸데없는 노력보다 빠른 포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선택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치에 따라 달라지는 케바케의 문제라 정답을 찾는 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포기를 선택한 이유가 사랑하는 사람과 더 나은 관계를 위한 배려가 아닌 자포자기로 인한 무기력함 때문이라면 그 포기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를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 노력과 포기 중, 노력을 많이 선택하는 시기는 대개 연애 초기나 신혼 초기다. 기꺼이 노력을 선택하고 또 그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서로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욕망과, 소소한 노력도 엄청난 능력으로 포장해주는 콩깍지 덕분이다. 그러나 사랑이 오래되고 또 익숙해지는 시기, 보통 권태기라고 말하는 시기가 오면 욕망 대신 좌절, 콩깍지 대신 현타가 장착되면서 인정받지 못하는 노력을 선택하는 것보다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 덜 부딪치는 방법이란 걸 느낀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력을 하는 입장에서 죽어라 해도 만족하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을 반복,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되면 신이 아니고서는 서운하고 화도 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화를 낸다는 건 인내심이 고갈되었다는 신호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와 노력을 인정해달라는 ‘그/녀’를 향한 극단의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바람직한 신호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애정이 삐뚤어지게 표출된 것이 화라고 하면 지나친 포장일까. 화(분노)는 나의 노력을 봐달라는 간절한 외침이라는 전제를 둔다면 갈등, 충돌, 싸움이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화를 내는 것보다, 싸움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최악은 화조차도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상대방에 대해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에너지가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원래의 관계로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반대로 관계 회복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선택은 관계 회복을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늘 자기 멋대로이기에 내 마음과 타인의 의지가 같은 방향, 동일한 힘을 장착한다는 건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낮다. 게다가 둘 다 동시에 노력을 선택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숱한 ‘사랑싸움’을 통해 깨달은 바다. 그럼 그냥 포기을 선택하는 게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는 유일한 방법일까.
만약 보통의 인간관계 경우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내 의지에 따라 안 보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의 경우는 간단하지 않다. 단지 지금의 관계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단칼에 끊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관계가 나쁘다고 해서 쭉 나쁠 것이라는 장담 역시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사랑하는 사이에 이런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면 이미 애먼 곳에 에너지를 모두 낭비한 탓에 둘은 번아웃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헤어지는 건 안 되고, 그렇다고 노력은 힘들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상대방에 대한 포기. 그러나 그 포기는 상대에 대한 포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인생의 반을 함께 공유하기로 약속한 이상 그 사람에 대한 포기는 곧 나의 일부에 대한 포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력해도 소용없고, 노력하는 것이 힘들다고 해도 포기를 먼저 선택해서는 안된다. 포기를 먼저 선택하면 노력해서 잃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거야 말로 진짜 손해다.
단지 힘이 덜 든다는 이유로, 또는 어차피 우리 관계는 틀려먹었다는 이유로 노력보다 포기를 먼저 선택하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는 노력보다 포기가 먼저 선택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나 완결된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어디 하나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곳, 뜯어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디 하나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죽어라 노력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포기하면 바로 티가 나는 것이 결혼 생활이다. 그러니 부디 포기를 먼저 선택하지 말고 노력을 먼저 선택하길. 상대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중하기 때문이기에,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가 그렇지 않은 이유보다 훨씬 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