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혹은 타이틀에 대하여

타이틀 없이 산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왠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어떻게 일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그 때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왔는지 의아스러울 만큼 무기력한 요즘이다. 무엇보다 오롯한 성인이라면 ‘주체적인 경제 활동’을 위해 무엇이든 도모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나를 제일 괴롭힌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나는 프리랜서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기엔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고, 백수라고 하기엔 극한의 자유를 즐기지 못하는 소인배인 터라 누가 뭐하는 지 물어보면 만만히 보이긴 싫어서 ‘찾는중’이라고 둘러댄다. ‘준비중’, ‘외출중’, ‘사용중’처럼 ‘찾는중’이라는 안내표지판도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팍에 달고 다니면 물어보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필력이 살벌하게 뛰어나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흘러넘치는 머리는 아니었지만 근면과 성실이란 시대착오적인 생활습관을 장착&유지한 덕분에 나는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팠고, 거기에 시간의 힘이 보태지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업으로 삼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타이틀도 얻었다. 남들보기에는 별거 아니지만 나의 노력과 시간이 쌓아올려 만들어준 타이틀인 만큼 나는 충분히 만족하며 살았다.

그리고 타이틀이 사라진 지금, 그동안 나를 규정했던 타이틀을 벗어버린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씩씩하게 제 2의 타이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근자감은… 원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맞닿뜨리고 보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한 수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약간의 우울감도 생긴다. 인생에 돈도 중요하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고 당당하게 만든 건 아마도 타이틀이었나 보다. 어쩌면 그 타이틀의 힘은 이미 소진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내가 눈치 없이 미리 준비하지 못한 건 아닐까, 반대로 내 능력이 타이틀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어거지로 끌고 온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각자 자신이 가진 타이틀이 자신의 능력에 비해 클 수도 있고 턱없이 작을 수도 있다. 나라는 사용가치와 타이틀이라는 교환가치가 서로 등가가 되는 경우에는 그 사람과 타이틀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운이 좋은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타이틀을 위해 이직을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부러워마지 않는 좋은 타이틀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내 친구의 아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런 이야기들이 막상 내 이야기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결국 현실에 놓였을 때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받게 되는 미움을 이겨낼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벌이가 보장되지 않는 타이틀은 공허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내 노력의 대가를 최소한이라도 보장되어야만 비로소 타이틀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 타이틀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반대로 아무리 타이틀이 그럴듯 하고 만족스럽다고 할 지라도 그에 따른 대가가 형편없거나 또는 벌이라고 말하기에 턱없이 모자란다면 타이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동기부여나 동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이 나에게 무얼 하냐고, 또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직까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배우고 찾는 단계라고 얼버무린다. 작가를 타이틀로 하기엔 아직 밥벌이를 할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도 하고, 이 타이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큼의 동기부여를 아직 못 찾았기 때문이다.


굳이 나의 욕심을 말해본다면 나는 성공하고 싶다. 세상이 말하는 그런 성공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을 타이틀로 삼아 주변인들에게 공감을 얻고 싶고, 또 이 타이틀로 내 몸을 뉘일 수 있을 딱 그만큼의 벌이를 하고 싶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무언가를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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