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직업을 꿈꾸고 싶지만,
주변에서 이직, 전업, 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흔이란 나이가 뭘 하기엔 너무 늦었나 싶다가도 뭘 하지 않기엔 너무 이른 나이라 그런가 다들 엉덩이를 들썩이긴 하는데 쉽게 일어나지는 못한다. 일어났다간 다시는 못 앉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아마도 주변의 시선일 것이다. ‘그거 해서 니가 밥은 먹겠어?’라는 의구심과 ‘니가 얼마나 잘 되나 보겠어.’라는 알 수 없는 질투가 집단을 탈출하는데 망설이게 하는 주범들이다.
소속이 있는 것, 집단의 일부인 것, 배당받은 일이 있다는 것은 습관 즉 반복을 본능으로 하는 인간이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소속이 있어야 타인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으며, 집단의 일부이어야 쉽게 공격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어진 일이 있고 그것을 해내야 자아실현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존재의 목적이 아닌 존재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성공과 발전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목적과 수단은 늘 전도되고 전복된다. 이것이 위너의 조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가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살면 탈윤리, 반도덕인가?”를 느끼는 때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때’가 오면 충성했던 집단의 일부, 또는 원 오브 뎀이 아닌 철저한 ‘개인’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때'의 주기는 나이로 따져본다면 대개 열살 단위로 오게 되는데 아마도 가장 마지막 주기이자 가장 발악하는 주기는 40대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처자식도 있고, 부양해야할 부모도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꿈도 포기하지 않는 40대들의 발버둥은 더 위험하지만 더 간절하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만,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은 프리랜서의 시간을 가장 부러워하지만, 프리랜서를 오래 한 사람들은 직장인의 안정적인 월급을 가장 부러워한다. 직장인들은 30일을 죽자고 버티면 월급이 나오지만, 프리랜서는 죽자고 버텨도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30일이라는 시간이 늘 한가하고 즐겁냐, 그건 더더욱 아니다. 사실 프리랜서에게 버티는 건 의미 없는 행동이다. 매일 늘 간절해야 한다. 죽자고 시도하고 도전해야 겨우 “한번 봅시다.”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다. 보지도, 읽지도 않고 까이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천 배는 많다. 직장인의 경쟁상대는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물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계가 경쟁상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경쟁상대이다. 그러니 어디 하나 경쟁이 아닌 것이 없다.
또 하나, 집단에 소속되지 않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출근할 곳이 없다고 해서 노는 것도 아니다.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를 지켜주는 건 어떤 것도 없고, 아무도 나에게 일을 배당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내 발로 일을 찾아야 한다. 일을 찾기 위해서는 만만한 상대를 찾아야 하고, 또 덤벼야 하고, 알고 보니 만만하지 않은 상대라 거절당해야 하고, 거절당한 사유도 모르지만 물어보지도 못한 채 다시 수정하고 또 덤벼야 한다. 쓸데없이 버텼다간 발전 없는 무능력한 백수로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세상은 정말 좁아 동종업계에서 나의 행동이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칭찬은 특급 비밀이 되기 쉽지만, 나의 뒷담화는 날개를 달고 사돈의 팔촌 귀에까지 초단위로 날아간다.
버티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고, 직장은 없어도 일을 해야 하는 직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프리랜서를 고집하는 이유는 오늘 뭐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한다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버티는 사회, 아니 ‘어쨌든’ 버티면 되는 사회는 개인적으로 별로 반갑지 않다. ‘버티는 놈이 이기는 놈’이라는 안일함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그들로 만들어진 집단과 사회는 진보하지 않는다.
‘개인’이란 말을 내세워도 욕을 먹지 않는 시대가 온 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우리의 사회가 나는 반갑다. ‘개인’이 버티는 힘은 집단보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집단이 아닌 오롯한 나를 위해 쓴 힘이기에 나 스스로 대견하다. 세상 어디에도 내일이 보장되는 사회는 없다. 천국이라고 내일이 보장될까. 천국이 좋은 건 늘 즐거워서지 미래를 보장해주기 때문은 아니다. 천국에 가서도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천국을 가려고 노력할 사람들이 대거 줄어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