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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이야말로 정치의 한복판이라지

이라영<정치적인 식탁>

1. 평가하려는 그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여자가 타주는 커피라는 둥, 물 조절이 기가 막힌다며 되지도 않는 칭찬을 하는 둥, 똑같은 믹스도 누가 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둥 개소리하는 상사들은 이제는 옛날 조상으로 남을 법도 한데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회사는 이런 차별을 막기 위해서 커피 자판기를 들였다고 당당하게 자랑하고 다니던데 자판기 백대가 들어와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갖다 주는 사람은 결국 여자들이다.

이건 남녀 차별이 아니라 친절한 서비스라고, 웃어른이나 상사에 대한 아랫사람의 예의라고 맞받아 칠지 모르겠다. 그게 진심이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한마디만 하고 닥칠 것이지 제발 되지도 않는 대기업 커피 가지고서 맛이나 논하지 말아라. 남자가 타도,  늙은 여자가 타도, 발로 타도 어차피 맥심 골드 아니면 화이드 골드니까.


아이를 데리고 숲 체험을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외길에서 들어오는 차와 마주하게 되었다. 길을 보니 저쪽 길이 험하기도 하고 공간이 좁아 아무래도 내가 후진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좋지도 않은 운전 실력이지만 조심조심 후진을 해서 길을 비켜주었다. 앞차가 슬슬 다가오고 나와 마주치려는 순간 맞은편 남자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며 한마디 한다.


“어우, 여자분이 작은 차로 운전도 잘하시네. 외길에서 후진하기 쉽지 않은데.”


내가 왜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칭찬을 들어야 하는가. 게다가 운전 실력과 작은 차의 상관관계는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 그냥 고맙다고 하고 가면 될 것을. 백번 양보해서 자기 나름엔 감사 인사랍시고 한 말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운전 실력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길을 비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면 충분하것만.


 

2. 밥상 엎는 그들


요즘은 식탁 문화가 대부분이라 밥상을 엎고 싶어도 못 엎는 시대이긴 하다. 나는 어린 시절 엎어진 밥상을 심심치 않게 봤다. 작은아버지가 인사 안 하는 사촌 오빠 혼내면서 한번, 아빠가 외박하고 들어와 잔소리하는 엄마 앞에서 한번, 그리고 백수 사촌 오빠가 우리 집에 얹혀살면서 싹수없는 년이라고 화내면서 한번.

엎는 건 그들인데 치우는 건 늘 여자들이다. 개고생 하면서 만든 음식은 맛도 못 보고 그대로 버려져야 했다. 개중 멀쩡한 나물이나 고기, 생선 같은 건 엄마 손에 의해 구조돼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며칠 동안 엄마의 유일한 반찬이 되었다.

엄마는 자기 손으로 만든 음식을 한 번도 예쁘게 먹어본 적이 없다. 늘 남이 젓가락으로 휘저어 놓은 것, 아니면 다 먹고 남은 것, 그것도 아니면 먹을까 버릴까 고민하다 혹시 몰라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형태를 알 수 없게 된 것들이 엄마의 식사였다.

지금의 나라고 다를까? 나는 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밥상을 엎는 남편도 없고, 같이 살 사촌 오빠도 없어 바닥에 버려진 반찬들을 주워 먹을 일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어제 남편과 아이가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은 으레 다음날 나의 점심 식사가 된다. 누가 먹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까짓 거 버린다고 가세가 기울 것도 아니지만 왠지 그 음식을 버리면 나중에 지옥 가서 남긴 음식을 짬뽕해서 먹는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이 생긴다. 음식을 남긴 사람은 남인데 왜 지옥 가서 짬뽕 먹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하는 건지.

물론 그렇게 오버스럽게 생각하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거 다 니 자격지심이라고, 사람이 삐뚤어진 거라고. 그러면서도 나중에 지옥 가서 남은 음식 먹을 걱정은   안 하는 그들이다.


3. 여자의 직업을 노리는 그들


여성의 일의 처음은 대개 무급에서 출발한다. 집안일, 육아, 돌봄 등. 돈을 주는 사람도 없고,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웃긴다. 니집 니가 청소하고 니 애 니가 보는데 왠 돈?

 하나는 돈이 보장되지 않는  앞에는 ‘전문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는다. 아무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하게 되면 달라진다. 여성의 일이 남성의 일로 이동하게 되면 무급이 아니라 유급이 되고 아무나   있는 일이 아니라 전문가의 일이 된다. 예를 들어 산파가 그렇고, 요리사가 그렇다. 여성의 일이었던 아이를 받는 일에 남자가 개입되면서 ‘전문 산과 의사라는 말이 붙게 된다. 량이란  한번도 해본적 엄마의 요리는 남자가 개입하면서 정확한!! 량이 생명인 전문요리사로 불린다.

전문직, 전문적이라는 말은 한 분야에 특화되었다는 뜻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배제, 배타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전문 산파는 없어도 전문 산부인과 의사는 존재한다. 설거지부터 요리까지 혼자서 다 하는 엄마는 있어도 설거지까지가 주방 업무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은 얼마 없지 싶다. 남성이 요리사인 주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하는 쉐프는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고급식당일수록 더.


여성의 일을 남성이 가져간다는 건 그 일을 하는 주체가 옮겨간다는 것 말고도 그동안 자본으로 환산 받지 못했던 노동이 자본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자본의 본질은 축적이다. 자본을 많이 축적하려면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 경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은 배제다.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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