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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빌런1

                  

저는 사생활과 사회생활이 따로 없어요. 인생은 숭고하고 축복받은 삶이죠.


겨우 뜬 눈을 비비고 핸드폰을 켰다. 새벽 6시 50분. 다시 끄고 잘까 했지만 카톡앱 배지엔 언제부터 쌓였을지 모를 수많은 메시지 999가+ 달려 있었다.

'도대체 이 새벽부터 누구야.'

짜증과 호기심이 시간차로 밀려왔다. 채팅창을 열어 보니 역시나 ‘타요’ 단톡방이다.

'다들 부지런도 하다, 이 새벽부터.'

대화가 올라고는 걸보니 진행중인가보다. 딱 10분만 뭉갤 생각으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카톡 처음 메시지를 찾아 스크롤 했다. 6시 4분에 진희언니가 보낸 것이 첫 메시지였다.    

 

진희언니: 확진자 45번. 온미동에 있는 P&p 학원 원장. 남자, 54살.

강변 아파트 103동 1~2라인 거주. 애는 부새중학교 2학년 남자.

일주일 전에 서울 호텔에서 하는 동창 모임 갔다가 걸림.

유리: 와우! 시청 알리미는 거주지만 알려줘서 불안했는데 깨알 정보 감사해요, 언니. ^^

진희언니: 감사는 무슨 ㅎㅎ. 이런 정보는 공유해야지. 어디 사는지, 나이, 성별, 직장 정도는 알려줘야 진짜 정보지. 접촉은 하지 말라면서 동선은 공개 안 하는 건 무슨 논리라니.

순정: 그러게요. 개인정보 보호보다 공익이 우선 아닌가요. 남 사생활 지켜주다 내가 걸리면 누가 보상해주나. 근데, 언니! 저 학원 예전에 상담 다녀온 데 아니에요?

진희언니: 어 맞아, 그때 상담 갔다 왔던 데. 이래저래 별로라서 패스했지.

유리: 소문은 괜찮던데ㅠㅠ 원장이 별로였어요?

진희언니: 소문만 좋으면 뭐 해. 원장이 영 별로야. 마누라는 집나가고 혼자 산다더라.

순정: 어머, 진짜요? 사이가 안 좋은가.

진희언니: 그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남편이 아주 숨통을 죄었나 보더라고. 그러니 마누라가 집을 나가지.

순정: 마누라가 엄청 예쁜가? 설마 의처증?ㅋ

유리: 순정언니, 또또 근본없이 상상한다 ㅋㅋㅋ

진희언니: 남의 집 사정이야 알 게 뭐야. 아무튼 사생활이 별로인 사람은 개끗발이야.     


확진자 동선 정보 공유로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인생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우리 넷의 대화는 대개 공동구매, 신상 카페, 맛집, 학원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늘 남걱정, 뒷담화로 끝났다. 누구랄 것도 없이 대화를 즐기다가도 갑자기 어느 한 명이 선을 넘는 말이 나오면 나머지 셋은 그제야 뜨끔한지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상황을 넘겼고 대부분의 대화는 그렇게 결론 없이 마무리되곤 했다.

뒷담화의 주인공은 실체가 있는 공공의 적도 있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쌓은 추적 실력을 발휘하여 만들어진 상상의 적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카톡의 대화가 평소보다 두 배는 많았다. 상상엔 끝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오늘의 대화 역시 그런 밑도 끝없는 상상력으로 999+가 되었을 것이 뻔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카톡 대화를 확인하자 단톡방에 숫자 1이 모두 사라졌다. 순정이 먼저 알은척을 했다.      


순정: 언니! 일어났어요? 이 엄청난 카톡 소리를 듣고서도 안 일어나다니 대단허다.ㅋㅋ

아이고 이제 봤네ㅠㅠ진동 소리도 못 들었어ㅋㅋ. 진희 언니! 정보 고마워요. 당분간은 그 학원 근처랑 강변 아파트 쪽으로는 다니지 말아야겠어요.


단톡방 알림을 무음으로 해놓은 탓에 나는 메시지를 가장 늦게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이 대화의 칠 할은 의미 없는 수다였고 나머지 삼 할만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보였다. 나는 이 삼 할을 위해 단톡방에서 버티겠다는 마음으로 알림을 무음으로 바꿨다. 그러다보니 종종 공구 인원 체크라도 할는 날엔 빨리 신청 완료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답이 늦냐며 다들 성화를 해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고, 바빠서 이제 봤네ㅠㅠ. 미안해.


로 둘러대며 열심히 지난 대화를 스캔하곤 했다. 대화 중간중간 나의 굶뜬 행동을 흉보는 우스개 말이 있긴 했지만 그정도면 웃으면서 봐줄만한 수준이라 굳이 곱씹지 않았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진희 언니는 아까 하던 대화를 계속 이어 갔다.  

    

진희언니: 지 몸 하나도 제대로 관리 못 하는 게 무슨 애들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건지, 세상에 한심한 사람들 많아.        

진희언니 말에 실소가 나왔고 옆에서 자던 남편이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입을 막고 그래로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하아, 언니 말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관리 되는 거였으면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은 뭣 때문에 10년 치 노화를 한방에 드셨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내 손은,      


그러게요, 언니.ㅠㅠ


라고 쓰고 있었다.

미 없는 동조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나쁜 행동이지만, 때로는 쓸모없는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아침부터 천 개가 넘는 단톡방을 종료하기 위해서 나는 의미 없는 동의를 선택했고, 다들 나의 의견에 동의했는지 아침 단톡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 사람에게 숭고한 사회생활도 우리에게는 그저 시시한 사생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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