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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대출금은 얼마입니까

자본주의를 먹고 자란 MZ 세대


소비공간을 놀이터로 이용하는 세대, 자본의 흐름이 곧 일상의 흐름인 세대, 저축보다 투자가, 아끼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세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MZ 세대는 그렇다. 이들에게 아껴 쓰고 남은 돈으로 저축하라는 말이야말로 세상 꼰대 같은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아껴 쓸 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 저축할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게 그다음 큰 문제이므로.

적어도 자본주의 키즈라고 할 수 있는 MZ세대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장착하고 싶다면 자본, 정확히는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한 각도를 바꿔야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 아니, 덜 오해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MZ세대의 사회 진출은 대부분 대학 등록금 ‘대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학 등록금 대출은 자기 이름으로 지는 공식적인 자산이자 빚이다. 경제 활동인으로서 시작을 저축이나 투자보다 대출과 이자를 먼저 알게 된 것은 좀 유감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운이 좋아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 중에 하나도 ‘마통’(마이너스 통장)이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먼저 ‘땡겨’쓰는 건 취업 성공 후 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자산증식 과정 중에 하나다.


그러나 경제활동의 목적이 축적이 아니라 대출금 상환이라면,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 저축 금리가 아니라 대출 금리라면 사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저축 만기일은 기다려질지 몰라도 대출금 상환일은 최대한 미루었으면 좋겠고, 저축 이자가 오르는 건 즐겁지만 대출 금리가 오르는 건 두려운 건 비단 나에게만 해당하는 시련이나 고난은 아닐 테다. 

경제활동을 지속한다고 해도 나의 재정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큰 딜레마 중에 하나다. 내 소득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에 노오력을 하지만 출발부터 다른 운이 좋은 사람과 경쟁한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살아남으려면 경쟁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절박감과 독기를 장착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열정이 넘쳐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담보될 때 가능하다. 노력의 보상도 희생의 대가도 따르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지면 이제는 다 필요 없고 딱 한방이면 된다는 생각만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웃지 못할 결론에 이른다.     


나는 얼마큼 대출받을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MZ세대들이 가질 수 있는 자본은 아주 적다. 장기적 경제 침체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노동은 이미 기득권이 다 채가고 남은 곳이라곤 열정은 인정해주지 않으면서도 열정을 요구하는 열악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MZ세대는 생존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득권과 경쟁해야 하고 그 기득권이 기른 이른바 ‘좋은 부모를 만나 운이 좋은’ 또 다른 MZ들과 경쟁해야 한다. 사방이 경쟁자이니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느낄 정도다. 단군이래, 유례없이 똑똑하고 자기 계발 잘하는 세대가 MZ 세대란 수식어와 단군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말은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진심으로 이해되는 이유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젊음과 패기로 뼈를 갈아 일해라,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실을 이룰 것이니 참고 견뎌라’와 같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그 시절에도 통하지 않는 조언은 그만두길. 좋은 부모, 좋은 조부모라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갖지 않은 대부분의 MZ세대가 가진 고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나는 얼마큼 대출을 ‘땡길’ 수 있을 것인가, 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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