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네 집 몇 평이야?

자랑과 잘난 척은 다르다.

1학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딸이 영통 중이었다. 그런데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들렸다.


“너네 집은 몇 평이야?”


친구의 질문이다. 티비에서나 들었던 질문을 직접 들으니 현타 제대로다. 그 질문이 단지 물리적 넓이를 알기 위해 물어본 게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역시는 역시다.


“우리 이사 갈 집은 30평이야.”


딸은 대답이 없다. 우리 집이 자랑할 만한 게 못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tmi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너 학원 몇 개 다녀?”

란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피아노”

딸이 말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피아노, 수영. 근데 다음 달부터 방송 댄스랑 어학원 다니려고. 그리고 방학 동안에는 엄마가 해외여행도 갈 거래.”

역시나 딸은 대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딸은 이미 진듯하다. 대답을 못하는 거 보니.


반응이 시큰둥하니 질문이 다시 들어온다.

“너 절친 있어? 나는 학교에 절친 있어. 너보다 훨씬 친해.”

굳이 너보다 라는 말을 다는 이유는 뭔지 그 아이의 마음이 자꾸만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이사 가서 얼굴을 보지 않은 지 일 년이 넘었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지낼 때도 절친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굳이 “너보다”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뭔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딸은

“그래, 나는 한 명.”

이라고 영혼 없는 대답을 했다.


더 이상 대화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딸은

“그럼 오늘은 그만 하고 나중에 시간 될 때 통화하자.”

라고 말한다. 그 소리를 하기 무섭게 친구는

“나 내일 바빠. 전화 못해.”

내일이라고 말한 적도, 바쁘냐는 말을 물어본 적도 없는데 딸은 순식간에 까였다. 옆에서 숨죽여 듣던 내가 빈정이 확 상한다.

“야! 우리 딸은 지금도 바쁘거든?”

이라고 한마디라도 해주고 싶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그 아이의 같지도 않은 비교와 자랑질에 혹시나 딸이 샐쭉해질까 봐 눈치를 봤지만 이상하게 별 표정이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딸의 친구를 디스 할 수는 없고 해서 슬쩍 묻는다.

“00는 자랑하는 걸 좋아하나 봐?”

딸은 무심하게,

“걔, 원래 잘난 척 잘해.”

그래서 나는,

“자꾸 비교하면 기분 안 나빠?”라고 물었더니 딸은 정말 귀찮다는 표정으로 ,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걔 잘난 척하는 거 다 아는데.”

라고 말하고 제 할 일을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 엄마와 몇 번 만나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아이들 더 크기 전에 서울에 집을 사야 하는데 제가 건강에 예민해서 그냥 그 돈으로 공기 좋은 지방에서 널찍하게 살까 싶기도 해요. “(이 얘기가 나오기 며칠 전 그녀는 전세 보증금만 있어도 좁아터진 관사에서 나가고 싶다고 한탄했다.)


”아이 아빠가 육아휴직을 내면 어디든 한 달 살기 하려고요. 괌도 좋은데 뭐 안 되면 가까운 동남아시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일전에 우리 둘은 직업 특성상 육아휴직과 해외여행을 호환마마보다 더 두려워하는 각자의 남편을 욕한 적이 있다.)


나도 그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생각해보면 “아, 그러시구나.”로 무반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듯했다. 왜? 팩트도, 팩트가 될 미래도 아닌, 그저 자신의 이루지 못할 희망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루지 못할 희망도 소망도 충분히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현실과 희망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걸 뻔히 아는 데도 마치 그것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으로 포장하는 그녀의 기술과 태도다. 현실과 소망의 거리가 크다면 그만큼 더 노력을 하거나 노력이 어렵다면 실현 가능성에 가깝도록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방법인데 둘 다 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만 늘어놓는 게 나에게는 매우 얄미운 잘난 척 딱, 그뿐이었다.



자랑과 잘난 척은 다르다. 자랑은 인간의 본능이다. 예쁜 것, 많은 것, 큰 것은 자랑하고 싶다. 자랑을 듣고 있는 건 유쾌하진 않지만 부러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잘난 척은 거짓말이다. 없는 데 있거나, 작은 데 큰 척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비난하는 사람은 있어도.

자랑은 부럽지만 잘난 척은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도 안다. 무엇이 자랑이고 무엇이 잘난 척인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걸러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