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센 엄마가 키운 딸은 며느리로 들이고 싶진 않아"

그날의 주제는 육아휴직. 그것도 남편들의 육아휴직이었다.


당시 나의 남편은 근 20년 동안 몸 담았던 직장과 직업에 매너리즘을 느끼며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자고 결정하기엔 둘 다 겁 많은 쫄보였기에 금전적인 리스크가 덜 한 해결책을 모색 중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권유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1년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서 몸과 마음도 쉬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정보도 알아보면서 현실성을 재보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과 함께. 더불어 나는 육아로 인해 몇 년 동안 업을 멈춘 상태였는데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면 내가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고, 그럼 금전적으로도 도움이 될 테니 썩 나쁜지 않은 해결책 같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남편은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나는 일하러 나가고 아이는 학교에 가면 자기는 그 긴 시간 동안 뭐 하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8년을 그렇게 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에 너무 미웠지만 싸움이 될까 대화를 접었었다.

마침 그 모임에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냈었던 지인이 있었다. 잘 됐다 싶어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내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쭉 듣고 난 지인은,


“꼭 그렇게 남편을 육아휴직을 시켜야겠어? 남편 집에 눌러 앉혀서 뭘 얻겠다고. 일을 하면 얼마나 하고 벌면 얼마나 벌어. 기껏해야 여자가.”


라고 말했다. “하....”가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남편을 집에 눌러 앉히려는 생각도, 많이 벌 생각도 없었는데, 게다가 자신의 남편도 육아휴직을 썼다고 들었는데 이런 반응은 좀 의외였다. 평소에도 거침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는 걸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긴 했지만 막상 내가 직접 듣고 보니 생각보다 현타가 크더라.


나는 누가 경제활동을 하는지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능력이 되는 사람이 경제 활동을 담당하고, 집안일이야 시간이 되는 사람이 할 수도, 그것이 남편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로 받아쳤다. 누가 일을 하면 어떤가? 누가 집에서 있으면 어떤가? 내 생각은 그랬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인은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해도 되나? 솔직히 나 같으면 자기같이 드센 엄마가 키운 딸은 며느리로 안 들이고 싶다. 우리 아들 기 못 피면 어떻게 해?”


나는 오로지 나에 대해서 내 생각에 대해서 얘기했을 뿐인데 상대방은 내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니! 그렇게 나의 딸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남자도 아닌 그 엄마에게 까였다. 기 센 엄마 아래서 컸단 이유로. 그날 나는 순진하게 육아휴직에 대해 조언을 들으려다 자격 미달의 예비 장모가 되었다. 육아 휴직에 대한 고민은 졸지에 내 아이의 미래까지 망쳐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이 그녀의 의견을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삼아 말한다. 예를 들어 그녀의 남편과 아들의 일주일치 계획은 모두 그녀 머리 안에 있다. 계획에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계획을 수정하는 대신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쳐서라도 기어이 그 계획을 완수한다. 예를 들어 빡빡해진 스케줄에 점심할 시간이 없으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을 먹으러 가도 되냐고 묻는다. 특별한 반찬 없으니 숟가락만 얹어 달라는 예의도 빼먹지 않으며.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온 가족이 모두 움직인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녀의 아들 역시 엄마의 말을 잘 따랐다. 적어도 지금까지 엄마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었다. 관리가 잘 된 만큼 공부도 곧 잘했고, 엄마 덕분에 선생님의 눈에 잘 띄었다. 교사들의 눈에 띄다 보니 대회를 나갈 기회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대회나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셈을 따져보고 수상의 가능성이 높은 곳만 골라 나갔다. 아들은 그렇게 해서 꽤 많은 수상경력을 쌓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아이는 알까? 정말로 엄마의 말은 한번 틀린 적이 없었는지, 아니면 틀릴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아들에게 없었는지. 뭐, 이 걱정이야말로 쓸데없는 내 오지랖일 뿐일 테지만.

그러나 엄마의, 아내의 선택과 행동이 늘 정답은 아니었음은, 가족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사실 빈틈 투성이었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졌다. 언젠가 남편 핸드폰에 위치 추적 어플을 깔고 수시로 남편의 동선을 체크한다고 한다는 말을 듣긴 했다. 명분은 주말부부인 탓에 오가는 거리와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그 내막에는 남편이 그녀 몰래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다 걸려 남편의 뒷목을 잡고 끌어왔다는 사실이 있었다. 아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들이 자기 몰래 온라인 게임하는 것도 모자라 신나게 욕을 해대는 현장을 덮친 후 그녀는 아들을 두고 외출할 때 항상 인터넷 공유기를 뽑아 들고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점퍼 안에 뭘 집어넣었는지 가슴께가 두툼하길래 뭐냐고 물어봤더니 공유기라고 하더라. 아들은 이렇게 안 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말과 함께.


그날 나는 한마디도 제대로 쏴주지 못하고 점잖만 떨다 온 것 같아 하루 종일 불쾌했다. 그런데 더 불쾌한 건 나의 이런 불쾌함을 그녀는 절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를 디스 할 의도도, 상처를 줄 마음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에는 '의도'가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뱉어낼 뿐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쁘다. 쓸데없이 순진한 그녀가 나쁘다. 다음에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나도 그렇게 엄마 말 잘 들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가 산 아들을 사위로 들이고 싶지는 않다고. 뭐.... 진짜 마음은 앞으로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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