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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 때문에 오늘 쉬겠습니다.

생리를 시작한 그때부터 출산 직전까지 나는 생리통을 안고 살았다.

생리통의 증상이나 통증의 스팩트럼은 우주만큼이나 넓다.

성인 여성이라면 생리라는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생리통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생리통 때문에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람도 있다.

생리통이 있어도 견딜만한 정도인 사람도 있지만 생리통 때문에 자궁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생리통을 공감한다는 건 자신의 역치만큼이라서

사실 같은 여자라도 생리통을 참을성이 없어 유난 떠는 것쯤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격하게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생리통은 내가 직접 그 통증을 느껴보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어렵다.



중학교 때까지 나는 생리하는 날은 조퇴가 거의 정해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생리통이란 말은 금기어나 마찬가지였고 생리통이 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에(그때 당시 생리를 시작하는 나이가 14~15세 정도였으니 12살에 시작한 나는 꽤 빠른 편이다.) 나는 친구들에게는 아프다는 말로 대충 설명하고 선생님에게도 배가 아프다는 말로 조퇴 이유를 대신했다. 허옇게 질린 얼굴과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은 손,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땅을 보며 말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안 된다고 말하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조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그랬다. 조퇴, 결석 등을 한다는 건 대학을 안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법적 전염병 말고는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건 어려웠다.) 생리하는 날 중 가장 생리통이 심한 첫날의 경우 1교시부터 9교시까지 매번 바뀌는 과목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가 아프니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안되겠냐고 사정을 일일이 말씀드렸다.

역시나 배를 끌어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들릴 듯 말 듯 사정을 말하는 내 앞에서 남자 선생님들은 눈도 안 마주치고 그냥 알았다고 했고, 그나마 여자 선생님은 양호실로 가서 쉬라고 말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양호실을 갈 수는 없었다. 공부를 안하더라고 교실 안에서 엎드려 있는 게 마음에 편한 소심한 수험생이었으니.

선생님 중에는 별명이 '에이즈'(그 선생님한테 걸리면 죽는다는 의미였다)였던 수학 선생님이 있었는데 하필 수학 수업이 있던 날이 생리 첫째 날이었다. 나는 수학 선생님을 찾아가 배가 너무 아파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으니 책상에 엎드려 있겠다는 말을 했고 내 상태를 보고 심상치 않다 느낀 선생님은 허락했다.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있었고, 그 일이 있었던 다음날 나는 에이즈 수업 시간에 누워서 쳐잤던 간이 부은 애, 돌아이, 그것도 모자라 공부 좀 하는 년까지. 되지도 않는 소문의 주인공이 잠깐 되기도 했다. 나에게 학창 시절과 함께 생리통은 정말 추억하고 싶지 않은 것 중에 하나다.


한 달에 한 번씩 이 개고생을 겪는 걸 지켜 본 엄마는 나를 데리고 산부인과도 가고 한의원도 갔다. 산부인과에서는 원인 설명은 패스하고 진통제와 주사를 줬고, 한의원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한약을 권했다. 하지만 생리통을 고쳐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통증도 나아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제외하고는. 그나마도 진통제를 먹을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껴야했다. 약을 자꾸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는 말, 진통제가 독해서 자궁 기능을 망친다는 소문을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생리통의 통증 지수를 1부터 10점으로 한다고 치면 내 통증 지수는 7.5 정도 인듯하다. 이 정도가 어떤 정도인지 예를 들면 이렇다.


1. 배를 통째로 쥐어짜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 -생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가장 빨리 느끼는 통증은 복통인데 이 느낌은 힘센 장정이 내 뱃속의 장기들을 빨래 짜듯이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다.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어디가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배 안에 모든 장기가 쥐어짜다 말다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아프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정말로 쥐어짜는 것 같다. 생리혈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과학적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쥐어짜서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2. 온몸이 붓는다. - 얼굴을 시작으로 손가락 발까지 팅팅 붓는다. 얼굴 모양이 달라져 보일 만큼 붓고 접으면 아플 만큼 손발가락이 붓는다. 보통 몸이 붓는다고 해도 반나절 정도나 지나면 어느 정도 부기는 빠지지만 생리 때문에 생긴 부기는 2~3일 정도 간다. 생리가 끝나면 원래 내 얼굴로 돌아온다. 대신 얼굴이 매우 푸석푸석해진다. 윤기 없는 얼굴은 배란기가 되면 매끈해지다가 다시 생리를 시작하는 순간 바람 든 무가 된다.


3. 무기력해진다-고통이 연속되니 무기력해지는 건 당연하다. 더 무서운 건 매달 이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도, 고통의 강도를 줄일 수도 없다. 자궁이라는 장기를 없애지 않는 한 생리통과 나는 늘 한 몸이 되어야만 한다. 고통이 무서운 건 그 고통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모르면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다. 한 달에 한번 정도면 견딜만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씩 누군가에게 정기적으로 무참하게 폭행을 당한다고 생각해보라. 정말로 견딜 만 한지.

너무 잔인한 예라면 다른 예로 바꿔보도록 하겠다. 매달 월급이 들어온다고 해서 월급날이 신나지 않은 적이 있나? 매달 생리를 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무뎌지는 건 절대 아니다. 다가오는 월급날이 설레듯이 다가오는 생리 기간이 두렵다.


그런데 내 경우처럼 생리통이 물리적인 증상으로 오는 것만도 아니다. 극도의 우울감, 짜증, 예민함도 생리통의 다른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생리통은 어떤 사람에겐 신체로 오고 어떤 사람은 감정으로 온다. 어떤 사람은 폭식으로 오고 어떤 사람은 금식으로 온다. 생리로 인한 여러 가지 증후는 정말로 수천 가지다.



출산 십 년이 지난 나는 다시 생리통의 고통을 겪고 있다. 얼마 전 폐경을 심각하게 걱정하면서 병원을 다녔는데 느닷없이 생리통이 다시 생겼다. 생리통을 유발할 만한 웬만한 것들은 다 제거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자부하는데도 생기니 급 두렵다. 그런데 더 두려운 건 내 아이의 앞날이다. 생리통은 대개 엄마를 닮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생리통이 심하면 그 딸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대개 출산으로 생리통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는 출산과 동시에 모체에 있었던 환경호르몬을 아이가 가지고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었다.(꽤 오랜 몇 년 전쯤 생리통으로 다루었던 sbs 스페셜로 기억한다. 그 사이에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할 아이가 걱정이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성장이 빨라 생리 시기도 당겨져서 빠르면 3~4학년에도 할 수 있다는데 고작 11살 전후의 아이가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싶다. 더 걱정이 되는 건 아이가 지금 내가 생리통 때문에 너무 힘들다, 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사회적 분위기이다. 2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생리통이란 언어는 미디어와 제약 광고 덕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감기나 두통처럼 쉽게 말해지진 않는다. 여전히 생리통은 은밀하고 쉬쉬해야 하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비밀스러운 병이다.


혹,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생리통 하나 가지고 유난이라고. 너만 여자고, 너만 생리하냐고. 다 비슷하다고. 혼자 극성떨지 말라고. 생리통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랑하냐고. 나는 여자의 생리통을 자랑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생리통을 그저 여자들이 일하기 싫을 때 가장 쓰기 쉬운 핑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쓸 뿐이다.


무엇이든 고유한 이름을 갖기 전에는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 뭉뚱그려 부르곤 한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지닌 특수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른바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일괄 적용되어 불리는 바보, 미친놈/미친년, 정신병 등등이 그렇다. 그러나 섬세하게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증상, 징후는 분명히 다르며 구분되고 치료법 역시 다르다. 그런데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더 근본적으로는 그들은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저 A, B, C, D, E.... 가 아니라 not A 일 뿐이다. 그러나 상대를 가늠하는 기준이 내가 되거나, 내가 포함된 집단이 되거나, "~이 아닌 것"이 되는 순간 분열과 혐오는 먼 데 있지 않다. 다른 것은 다르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지 혐오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나는 생리통이라는 통증이 유난스러움으로 뭉뚱그려 해석되는 질병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다름이라는 것이 좀 더 세밀하고 촘촘하게 이해되고 수용되었을 때 어떤 이름을 갖게 되는지, 또 불리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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