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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은 고가의 것들이 많다. 그런데 대개 예쁘고 멋진 쓰레기다.

물론 오래 잘 가지고 논다면야 그나마 덜 아깝지만 아이들의 습성이 대개 비슷하듯이 갖고 싶은 물건 앞에서 울며불며 안 사주면 망부석이 될 것처럼 하다가도 막상 사주면 몇 번 끄적거리다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놈의 징징을 견디지 못하고 사주면 며칠은 행복하다. 그러나 얼마 못가 결국 내가 산건 예쁘고 비싼 쓰레기구나, 를 외치며 통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아이가 한 살씩 먹으면 덩치 큰 장난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대신 본격적인 예쁜 쓰레기 수집에 진입한다. 플라스틱 딱지, 오 만개의 스티커, 공부 실력과 아무 상관없는 샤프와 지우개 컬렉션, 스탬프 등등. 물론 취향이니 존중해줄 필요도 있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긴 하지만 오로지 사고, 쟁이기만 하는 소비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저 수많은 물건들이 제 구실을 하는 데 쓰이려면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십 년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쓰려고 사는 건지, 그냥 사려고 사는 건지.



그런데 예쁜 쓰레기는 또 있다. 체험이란 이름을 달고 여러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 여기서 할 수 있는 체험이란 사실 마무리 공정 단계 투입에 가깝다. 예를 들어 물건이 만들어질 때 생산부터 소비까지, 혹은 재료 준비부터 완성 단계를 10으로 친다면 실제로 아이들이 투입되는 단계는 9단계 혹은 8단계부터이다. 거의 마무리만 하면 끝나는 상태에서 체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공짜라서 하거나, 엄마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정말 예뻐 보여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험이 아닌 그저 체험 딱 그만큼이다. 물론 몇 시간을 투자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아니고 기껏해야 ‘십분 클래스’에서 뭘 대단한 걸 느끼려고 하냐는 볼멘소리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어쨌든 성취감을 느낄 만한 괜찮은 경험이라고 부르기엔 좀 부족한 이 체험에서 남는 건 활용도가 낮거나 거의 없는 ‘예쁜 쓰레기’다.


알록달록 가면 만들기, 자기만의 에코백 만들기, 향기로운 방향제 만들기 등과 같은 십분 클래스에서 아이들이 참여하는 과정이란 기껏해야 색칠하기, 꾸미기, 또는 재료 섞기 정도다. 정해진 시간과 재료를 가지고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설명하는 시간이나 만드는 과정은 되도록 최소화한다. 담당 체험 교사는 한 명인데 체험하는 친구들은 기본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명도 넘는다. 여기저기 선생님! 하고 부르면 식은땀이 줄줄 난다. (그 와중에 슬쩍 새치기로 자리 잡고는 아이를 부르는 부모도 있다. 그러면 담당 교사는 질서 윤리 체험도 담당해야 한다.) 사실 대단히 괜찮은(?) 물건이 아니면 참여자의 호응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기다리는 걸 거절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런 진행이 유지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이가 가장 많이 체험했던 “십분 클래스” 중 하나는 밑그림이 그려진 에코백에 색칠하는 이른바 “나만의 에코백 만들기”이다. 반성하자면 집에 있는 에코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애들이 모르긴 몰라도 대여섯 개는 있는 것 같다. 아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들고 다니고 싶지만 솔직히 엉망진창!!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으로도 커버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에코백이다.) 더 웃긴 건 지들이 색칠한 가방을 지들도 안 들고 다닌다는 거다. 안 예쁘단다.

시간 단축과 그림을 못 그리는 친구들을 위한 배려로 밑그림까지 완성된 반 DIY 에코백이 지금도 어느 행사장 구석에서 수백 개씩 쌓여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환경을 생각해서 탄생한 에코백인데 어째 여기서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색칠 과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레디메이드에 불과하다.



하나의 물건을 완성한 다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체험, 또는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결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못하는 체험이 얼마나 교육적 가치가 있을까? 이른바 시중에 교육용 키트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것들은 모든 엄마들의 워너비인 ‘자기 주도 학습’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도 만들 수 있도록 매우 쉽고 간단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대개 손으로 조립만 하면 완성되는 수준이다. 하다못해 가위, 칼, 풀도 필요 없는 경우도 많다. 키트 안에 일회용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한번 쓰고 만들어 완성하면 끝이다. 마땅히 사용할 만한 용도가 없거나 재사용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말 그대로 예쁜 쓰레기다. 그것들은 며칠 동안 티브이 옆에서 전시되다가 슬쩍 퇴출당하는 게 보통의 생성과 소멸 순서다. 덩치 큰 완성품들은 그 짧은 며칠도 못 버티고 엄마 손에 쥐어져 재활용장에 끌려가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에게 체험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험만큼이나 중요한 건 만드는 과정과 함께 그다음에 행동의 변화다. 사실 여기까지 아이들을 유도하려면 공짜 십분 클래스로는 불가능하다. 시간을 투자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돈이 든다. 그러나 꼭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사실 완벽한 상품을 목적으로 하지만 않아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DIY는 많다. 아이들마다 개인의 차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아이들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결과보다 그 과정에 훨씬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천편일률적으로 그려진 밑그림에 색칠한다고 그게 오롯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호기심에 재미는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오롯한 DIY는 아니다.


무엇을 만듦으로써 뿌듯함을 느끼려면 자신의 손으로 처음부터 끝가지의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컨베이너 벨트를 지나가는 물건의 서른세 번째 공정을 내가 채웠다고 해서 그 물건을 내가 만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나는 일부 참여자일 뿐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은 다 만들어진 기성품에 색깔만 입히는 과정 정도만으로도 체험이라고 부른다. 안타깝지만 그것을 보며 뿌듯하거나 소중하지 않으냐고 물어보기엔 아이 손때가 묻어있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짜잔, 하는 아이의 앞에서 “예쁘네~”라는 말로 영혼 없는 칭찬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결국 예쁜 쓰레기가 또 하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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