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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광효 Mar 22. 2024

74.  남도로 떠난 봄 문화 여행


해운대 주간일기 74  


남도로 떠난 봄 문화 여행 


최근 선배 3분과 의기투합하여 남도(南道)에서 봄을 만끽하고 문화유산을 접해 보고자,  여행 구상은 하되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했다. 


하동 최참판댁, 구례 화엄사, 강진 다산초당과 다산박물관, 해남 윤선도 유적지, 대흥사와 두륜산, 땅끝 전망대, 명량 울돌목과 우수영, 목포 구등대, 근대역사관, 문예역사관 등을 둘러보았다. 


하동 출신 선배님은 고향 하동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문화해설사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내용으로 우리를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안내해 주셨다. 


평사리 언덕 스타웨이(Starway)에서 내려다보면 평사리 넓은 들판 가운데 나란히 서 있는 부부 소나무와 섬진강이 굽이돌아 생긴 모래톱이 건너편 광양 매화마을과 조화를 이룬다. 박경리는 꿈에서 토지의 배경을 창조했고, 후대의 사람들은 “토지”를 현실에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선배님이 들려준 박경리 토지에 얽힌 뒷이야기, 하동사람인 소설가이자 언론인 이병주 그리고 하동에 사는 소설가 공지영 등 생생한 하동 이야기와 화개장터에서 맛보는 ‘옥화주막’의 참게탕은 우리가 하동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경계로 하는 섬진강을 따라 나지막한 구릉이 마치 파도의 높낮이처럼 연이어 늘어서 있다. 국도 19호선을 타고 가면 서편 광양에 매화가 만발하다. 지금은 막 절정을 지나는 시점이다. 드문드문 비어있는 구릉을 매화로 채운다면 그 장대함과 황홀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하동 쪽의 벚꽃과 녹차가 함께하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무릉도원이 될 것 같다. 그러면 힐링 장소의 최적지가 된다.


강진, 해남 사람들은 남도를 먹거리와 예향(藝鄕) 임을 자랑했다. 광주 출신의 페친이 소개해 준 "청자골한정식"에서 저녁 입맛을 돋우고, 두륜산 밑 ‘설아다원’에서 한옥 스테이를 했다. 주인장이 읍내에서 풍물강좌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에게 손수 기르고 만든 녹차와 함께 "녹차 아리랑" 등 창 몇 곡을 거침없이 선사해 준다. 호남 화단의 실질적 종조(宗祖) 서화가 소치 허련, 우리나라의 다도(茶道)를 정립한 다성(茶聖) 초의선사,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인연과 남도에 남긴 흔적들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내일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선 멈춰야 했다.


아침에 보는 일출은 장관이었다. 넓은 뜰을 지나고 갯벌을 넘어 바다와 산을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붉은 기운이 올라왔다. 대흥사는 골짜기 깊숙이 숨어 있다.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이라 전쟁의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승병이나 의병의 집결지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 어떤 절보다 전각을 많이 갖고 있다. 뒷산 능선을 따라 누워있는 와불(臥佛)이 대웅전의 부처 역할을 해서 ‘대웅보전’은 한쪽 옆으로 밀려나 서쪽 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찰에 인연을 맺었던 서산대사, 초의선사 등 고승의 흔적과 조선의 명필가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들의 글씨가 남아있다. 두륜산 케이블카 정상은 해남, 강진의 땅 모습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나지막하기도 하고 물결이 출렁이는 모 양 같기도 한 구릉과 들판과 끝을 알 수 없는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곡식과 어물(魚物)이 풍부한 고장이다.


점심에 해남읍 내의 해남매일시장을 찾아갔다. 현대화 사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깔끔했다. 1층은 여느 전통시장처럼 채소와 생선 그리고 잡화를 팔고 있었고, 2층은 수공업 제품과 청년 창업의 공간이었으나 점포에 활기는 없었다. 돈은 들었으나 효과가 시원찮다. 시장에서 식사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막 돌아 나오는데, 바로 여기다 할 만한  백년가게, ‘천일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으론 좀 비쌌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한 끼였다. 


땅끝 전망대는 국토의 남쪽 끝에 발자국을 남기는 의미와 점점이 늘어선 남도의 섬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해남 서쪽 바다를 따라 길을 달리면, 명량해전의 전쟁터, 울돌목에 이르면 성난 바다를 만난다. 울돌목의 파도는 회오리치기도 하고, 거꾸로 흐르기도 하고, 태풍을 동반한 것처럼 바다를 집어삼킬 듯이 굉음을 내고 달려온다. 바다와 파도가 무기 그 자체이다. 이를 활용한 이순신 장군은 상상 그 이상의 사람이다.


목포에 들어와 숙소를 정하고 목포의 명물 낙지 탕탕이와 갈치조림으로 식사를 하고, 여행의 이것저것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이른 아침에 현지인이 소개해 준 ‘조선쫄복집’에 들러 졸복탕을 음미했다. 졸복을 갈아서 만든 찐한 국물은 장어탕의 형태를 띠었으나 맛은 걸쭉하고 달콤했다. 신의 한 수 맛이다. 전국에 유일하다고 자랑도 한다.


목포는 근대도시다.


조선 말기에 부산포가 개항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항된 곳으로 그때부터 도시가 생기고 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호남의 곡물 등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주된 항구가 되면서 도시는 급속히 팽창했고, 근대 문물과 근대교육이 일찍이 들어왔다. 그 흔적들이 도시의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일본영사관이었던 ‘목포근대역사관’은 작은 건물이지만 목포의 역사를 알차게 잘 표현해 두었다. 여기를 나오면 근대의 거리가 나온다. 일제 강점기의 건물들이 그대로 또는 리모델링을 한 채로 방문객을 반긴다. 그 시대에 온 것처럼.


또 남도의 중심도시라 남도의 문화가 목포에 모여있다. ‘목포 문예역사관’에는 운림산방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치, 남농으로 이어지는 운림산방(雲林山房) 화맥(畵脈)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여행의 경험은 늘 생각의 폭을 넓힌다. 남도의 땅을 보면서 그들의 삶의 흔적과 지금의 모습에서 살아온 궤적을 찾는다. 이번엔 녹차, 서예, 그림, 국악 등에서 초의, 다산, 소치, 남농 등 선현에 가까이 다가갔다. 


여행의 동반자는 날 깨운다. 같은 캠퍼스를 다녔으나, 삶의 시간이 다르고 사회 경제적 환경이 같지 않았으니 ‘아 그때!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는 풍성한 경험들이 여행을 즐겁고 보람 있게 했다. 특히 이번에 함께 여행한 선배는 역시 선배이고 스승이었다.(2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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