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광효 Feb 24. 2024

73. 민간위탁과 지역 제한 경쟁입찰


해운대 주간일기 73. 민간위탁과 지역 제한 경쟁입찰


장면1. 


부산시 조례에 따르면, 부산시는 사회적경제 등의 지원 업무를 부산시 출연기관이나 민간단체 등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지난 10여 년간 이 업무를 민간단체에 위탁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느닷없이 민간단체는 믿을 수 없고, 능력도 없다는 이유로 공모도 없이 이 업무를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부산시 출연기관인 경제진흥원으로 업무를 위탁해 버렸다. 


민간은 하루아침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장면2. 


정부의 마을기업 관련 지침에 따라 부산시는 “마을기업 지원기관”을 선정하여 마을기업에 대한 지원 업무를 맡긴다. 앞의 경우처럼 그냥 부산시 공공기관에 주면 될 걸 이번에는 민간 운영기관 모집 공고를 했다. 


부산시 출자 출연 기관이고, 흔히 우리가 아는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인 부산디자인진흥원이 법적으로는 민간기관이라 민간의 몇 개 업체와 경쟁을 했다. 


그런데 기존에 위탁받은 경험이 있는 민간업체에는 가점이 아닌 감점을 준단다. 그것도 위탁 후에 받은 좋은 운영실적과는 무관하게. 이건 소송으로 다투어야 할 것이나, 민간은 그럴 여유가 없다. 아무튼, 민간이 졌다. 


디자인진흥원을 이런 일 하라고 설립한 조직은 아닌데, 아무 일이든 막하는 느낌이다.


장면3.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의 “부산지역 내 운영, 지원기관” 모집에 부산의 몇 개의 민간업체가 응모했다. 또 부산시의 공공기관과 경쟁했다. 민간이 졌다. 이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에 맞는지, 이 공공기관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중앙에 가서도 부산은 부산시 공공기관과 민간업체가 서로 경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이기기 어려운 경쟁을 한다. 


장면4. 


부산시 공기업이 제법 큰 규모의 연구 용역을 “지역 제한 경쟁입찰”로 공모했다. 용역의 규모로는 지역 제한이 안 되는데, 사유를 확인하니 정부가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참작하여 ‘한시적으로’ 지역 제한의 범위를 확대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까다로운 용역 수행조건을 갖춘 지역의 민간업체 몇 군데가 응모하였으나, 함량 미달로 적격자 없으므로 모두 탈락했다. 그리고 바로 그 용역을 “전국 경쟁입찰”로 돌렸다. 


지역 제한을 했다는 책임회피의 행정일까, 지역의 무능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정말로 지역업체에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을까에 대해 의심한다.


장면5. 


부산의 기초자치단체 공기업이 지역제한의 범위를 넘어서는 규모의 연구 용역을 “전국 경쟁입찰”로 공모했다. 


서울의 민간업체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수주해 갔다. 


아! 서울이여, 지방을 어찌하오리까?


장면6. 


정부가 올해부터 전국의 시도에 있는 민간이 하던 “사회적기업 중간지원기관(운영기관)”을 전부 없애 버렸다. 


대신에 중앙에서 지방에 본부 또는 센터를 설치하여 직접 운영한다. 정규직은 중앙에서 내려오고, 계약직은 지역에서 뽑는 형태로 중앙과 지방의 수직 예속화를 구축한다. 


지방의 민간영역이 생존할 터전을 없앴다. 지역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잃고 부산의 거리로, 서울의 거리로 내몰린다. 


장면7. 


정부 산하 국가공기업과 국가 공공기관이 발주한 “전국 단위 사업”에 응모를 했다. 서울의 민간업체와 경쟁했다. 이겼다.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었나 보다. 약간의 신바람이 났다. 연구원들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업무를 마무리했고, 나름 뿌듯함을 가졌다.


우리 연구원 같은 민간조직이 또는 사회 경영계열의 영역이 부산지역에서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간다. 


지금까지 연구원은 지역 인재의 사다리 역할을 해 왔다. 연구원들의 일부는 연구원을 나가 연구원과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일부는 좀 더 큰 조직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또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자리 잡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던 이 분야의 민간영역 일자리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부산의 민간영역이 뿌리부터 그 존재를 잃어가고 있다.


큰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땅속 깊숙한 잔뿌리들이 튼튼히 잘 자라야 한다. 그 잔뿌리가 없는 큰 나무는 없다. 


글로벌 허브도시를 꿈꾸는 부산, 산업은행을 유치하고자 하는 부산이라는 거목이 성장하려면 거창한 구호 속에 썩어가는 민간 생태계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늦기 전에 부산시가 나서야 한다. 


민간의 영역이 사라지면 공공의 영역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그러면 부산은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서울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고, 부산시민의 삶은 고달파진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기 위해 전국을 상대로 경쟁한다. 그리고 자신을 혁신한다. 오직 살고 싶은 부산에서 생존하고 싶은 뜨거운 갈망 하나로.

작가의 이전글 72. 영화 ‘건국 전쟁’과 이승만 대통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