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유교·선비문화를 찾는 가을 여행

by 배광효

해운대 주간일기 82. 유교·선비문화를 찾는 가을 여행


올봄에 “남도로 떠난 봄 문화 여행”을 즐긴 우리는 이번에 경북 안동, 봉화, 영주지역의 유교와 선비문화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소수서원 등 서원의 대표주자 3곳을 둘러봤고, 유교 박물관, 농암종택, 영주 선비촌, 무섬마을 고택, 하회마을과 부용대 등 양반과 선비들의 흔적을 찾았고, 지역의 대표 사찰인 부석사와 봉정사를 방문했다. 아울러 청량산, 범바위 전망대, 분천 산타마을, 백두대간 수목원 등 주요 관광명소에 방문의 이름표를 남겼다.


이른 아침 센텀에 집결했다. 선배님이 승용차 세차도 하고, 타이어도 앞뒤로 교체하고, 여행자보험도 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주셨다. 경험자의 사전 대비는 철저하다. 내가 여행계획을 짜고 선배님들의 의견을 들어 수정했다. 지금은 여행의 비수기라 여행 노선, 식사, 숙박 등에 대한 정보만을 갖고 예약 없이 출발했다.


첫 번째 여행목적지는 병산서원과 인근의 하회마을이다.

안동으로 접어들어 나들목을 나와 병산서원 가는 마지막 길에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교통의 불편함으로 꼭 오고 싶은 방문객에게만 접근을 허락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좁은 비포장길의 불편함을 마다하고 관광버스는 드나들고 있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으로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모체로 설립되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다. 서원 입구의 만대루에 오르니 낙동강 물줄기와 하얀 모래가 반짝이고, 앞산인 병산에 단풍이 물들어 울긋불긋하고, 이웃하여 울창한 송림들이 주위를 휘감는다. 이곳이 바로 시적 공간이요 철학 공간이다. 소리를 한다면 시조를 읊조리고 싶다. 속세가 잠시 사라졌다. 옛 선현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걸어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금방 닿을 곳이 하회마을이다. 하지만 찻길이 없어 돌아가야 한다. 하회마을은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 류씨(柳氏)의 씨족 마을이고 양반고을이다. 이곳은 몇 번 방문한 경험이 있어 풍산 류씨의 대종가(大宗家)인 양진당과 류성룡의 종택(宗宅)인 충효당을 중심으로 둘러봤다. 그리고 선배님께서 인연이 있는 심해정사를 방문하여 차 한잔의 대접을 받았다. 또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의 전체 모습과 류성룡의 ‘징비록’ 집필 이야기, 한국식 불꽃놀이 ‘선유줄불놀이’의 국내외 인기 등 의미 있는 소소한 담소를 했다.


하회 장터에서 소고기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애초 안동호의 월영교를 걸어볼 생각이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퇴계 이황을 만나러 부리나케 도산서원으로 달려갔다.


도산서원은 후손들이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지금의 안동댐 위쪽인 낙동강 물줄기에 세운 서원이다. 이황이 낙향하여 거처하면서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당’에 선생의 사후에 추가로 건물을 지어 도산서원이 되었다. 차에서 내려 도산서원으로 걸으면 오른쪽으로 낙동강 상류의 맑은 물이 안동호에 갇혀 흐르는 듯 마는 듯하고, 강 가운데 떡하고 버티고 있는 봉오리 하나는 이곳이 수몰 지구라는 걸 대변한다. 서원의 앞마당엔 왕버들 나무가 세월의 풍파를 모두 이겨낸 흔적들을 간직한 채 힘겹게 버티고 서있다. 아마 거쳐 간 유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의 면면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도산서원 가까이에 전통 유교 문화자원을 관리 및 보존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유교 문화 박물관이 있다. 경북 북부지역의 개별 문중이나 서원 등에서 기탁받은 자료를 전시하거나 우리나라 유교의 계보와 유교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리고 있다. 고려 말경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교는 세상의 규범이었고 지배의 수단이었다. 우리가 아는 관료, 대학자, 청백리 모두가 유교에 바탕을 두고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이를 대표하는 한 분이 농암 이현보이다.


농암종택을 첫날의 숙소로 정하고 연락했더니 그냥 와서 방을 선택해도 된단다. 오늘은 예약자가 없다는 말씀이다. 하회마을이나 무섬마을처럼 낙동강이 휘감는 지역에 절벽을 마주 보면서 넓은 지역에 농암종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부터 큰 종택이 아니었으나 후대에 증축하였고, 이를 후손이 잘 보존, 관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밤하늘의 별을 하염없이 본다.


농암 이현보는 문과에 급제해 잠깐 조정에 근무했으나 공직의 대부분을 지방에 근무한 목민관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백성에 관대했으며, ‘경로’와 ‘박애’를 가치 덕목으로 삼아 백성과 조정의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목민관의 모범을 보였고, 청백리의 전형이었다고 한다. 다시금 나의 공직 생활을 회상한다.


또한, 농암은 대시인(大詩人)이며 대효자(大孝子)였다. 부모를 위해 정자 ‘애일당’을 짓고 극진히 모셨다. ‘농암가’, ‘효빈가’, ‘생일가’ 등 시가 작품을 남겼고 강호문학의 창도자로 ‘어부가’를 지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주었다.


이른 아침에 본 농암종택은 잔잔한 안개와 이슬, 마주 보는 절벽과 강가 모래밭, 주변을 둘러싼 소나무들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하루만 묵기엔 너무 짧다. 며칠을 머물면서 이현보를 느끼고 싶을 지경이다.


청량산 입구 청포도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육사문학관이 근처에 있으니 ‘청포도’의 이름을 빌려와 식당 이름을 지었다고 주인이 말한다. 40여 년 세월을 부산에서 살다가 등산하러 다니면서 알게 된 청량산의 매력에 빠져 이곳으로 와 정착한 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부산이 그립지 않을까. 주인의 수다 속에서 그 일면을 본다.


봉화의 산골짜기는 깊고 넓어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선비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유래를 두고 범바위 전망대를 만들어 호랑이 조형물을 만들어 두었다. 그것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황우산의 풍경과 낙동강의 물줄기가 만든 한반도모형의 지형이 더 인상적이다. 오르막길인데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신비의 도로를 마주하는 건 덤이다.


분천 산타마을에서 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을 타고 싶었으나 예약을 하지 않아 이미 열차표가 매진되었다.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총면적 5,179ha에 종자저장시설, 기후변화지표식물원, 연구시설, 호랑이 숲 등이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백두산 호랑이를 직접 볼 수 있다. 6마리 중 3마리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범띠인 친구를 마중 나온 건가.


부석사의 압권은 사찰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첩첩이 연결되고, 아득히 먼 곳의 산도 그 자태를 뽐낸다. 가슴이 열리고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산의 기운이 내 품 안으로 들어온다. 부석사 무량수전, 조사당 벽화, 석등 등의 유명세보다 더 감격스럽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은 소수서원과 선비촌이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최초의 서원, 백운동서원은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서원 동쪽에 죽계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입구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자리 잡았다. 나중에 풍기군수로 온 퇴계 이황이 왕의 사액을 받아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之)”,는 뜻으로 소수서원이 되었다.


서원은 대체로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있는 풍광이 우수한 곳에 건립된 것 같다.

공부는 속세를 벗어나 자연과 함께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걸까. 옛사람은 이런 곳에서 신독(愼獨)의 마음으로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학문에만 정진했을까. 때로는 밀려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기지는 않았을까. 조선이라는 나라가 양반의 신분 사회이고 서원이 세워진 곳들을 보면 대부분 양반은 후자에 가까웠을 것 같다. 그래도 조선 시대의 교육기관이라는 서원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루를 쉬지 않고 달리고 걷기를 반복했더니 피곤이 밀려온다. 인근의 풍기온천에 몸을 담가 온천물로 피로를 씻겨낸다. 영주 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기력을 보충하고자 그 유명한 영주 소고기를 먹으려 택시를 탔다. 미리 정한 맛집으로 가는 동안 택시 기사의 말을 듣고 현지인 맛집, 중앙식육식당으로 장소를 바꿨다. 풍기 인삼을 먹고 자란 질 좋은 소고기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아침은 영주전통묵집에서 돼지고기, 김치, 묵이 조화를 이루는 ‘태평초’라는 메뉴와 아주 부드러운 집밥 순두부를 즐겼다. 태평초는 서민들의 보양식의 하나로, 편안한 세상을 바라던 민초들의 염원이 담긴 영주의 향토 음식이다. 영주지방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운동으로 죽음의 땅이 되었고 민초들의 삶이 피폐해진 곳이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는 메밀과 묵은 이곳 사람들의 주된 양식이다. 영주에 가면 ‘묵’ 음식은 필수다.


영주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내려오면 무섬마을에 다다른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지형적 모양이나 종택, 고택이 있는 집성촌인 점에서 하회마을과 대동소이하나 일반에 덜 알려졌을 뿐이다. 옛 선비고을의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보존보다 ‘갑툭튀’의 현대적 건물이 시야를 방해한다. 무섬마을에 가면 외나무다리에서 인생샷을 찍어야 한다. 아마 옛사람이 자주 왕래하는 것보다 한 번씩 건너편으로 갈 필요가 있어 이 다리를 놓았을 것이다.


통일신라의 능인 대사가 창건했다는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진 극락전을 보는 감동, 네모 형태의 영산암 한가운데에 자리한 바위 위의 소나무를 보는 재미가 전부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갔다는 사실은 봉정사의 문화적 가치를 대변한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여정이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여행 성공의 절반은 동반자에 좌우된다고 했던가. 존경하는 선배님들의 배려에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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