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손을 뻗어 파도를 만졌다. 동시에 밀려드는 숱한 기억들. 내 방랑의 시절과 연, 그리고 바다가 된 소녀까지. 결코 오래된 일 아니었으나 마치 천 년도 전에 겪은 일처럼 깜빡깜빡 모든 것이 희미했다. 꿈같았다. 한 편의 질기고도 아름다운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파도도 수평선 너머에서 일렁이는 빛도 신기루의 일각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만났던 노인이 했던 말처럼, 모든 것은 저 파도처럼 어디론가 조곤조곤 흘러간다. 영원히 고여 있지도, 흐르다 얼어버리지도 않는다. 바다는 흘러가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던 말을 기억한다. 그렇게 한 발짝 씩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 그 두 사람 모두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이르면 웃으며 말할 수 있겠지. 힘겨운 항해였다고. 말도 못 할 만큼 눈물겹고 외로웠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니 버릴 것 하나 없이 너무도 값진 시간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