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내게 무해한 사람> 은 <쇼코의 미소>로도 잘 알려진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소재로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던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던 따스한 책이었으나, 성향과 상황에 따라 거부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만큼 섬세하며, 마음의 결을 순식간에 흐트러놓는 필체로 쓰인 책이다.
일곱 개의 단편 (그 여름 / 601, 602 / 지나가는 밤 / 모래로 지은 집 / 고백 / 손길 / 아치디에서) 중 내가 가장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 이야기인 '그 여름'이었다.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작품 속 수이와 이경이 공유한 시간은 단순한 연애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되어주었다. 새로운 세계는 환희와 희열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다른 차원의 고통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강렬히 사랑한만큼 유일하고 특별한 고통을 남겼다. 사랑에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고 사람만이 중요하다. 한 사람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떠한 성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정의하는 성적 사랑은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연민조차 없는 그 사랑은 과연 진실일까 허상일까.
이 사회가 (그리고 내가) 말하는 윤리는, 옳음은, 가치는, 과연 누구의 기준에 맞춰진 것들인가.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면 적어도 그 진리를 인지하며 사는 이들은 고통스럽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는 이경과 수이의 사랑이 가장 절대적인 진실처럼 느껴졌다.
결국 삶은 혼자 사는 것이며 외로움 또한 필연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잃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