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던 겨울 아침.
그날의 공기는 유난히 조용했고, 나는 말 대신 멈춰진 숨으로 그를 배웅했다.
끝이 아닐 것 같던 이별.
차가운 인도.
그리고 내가 잊었다고 믿었던 날들을
하나씩 되돌려주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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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머릿속에도, 말에도 살지 않는다.
몸속에 산다.
가슴 한가운데,
숨이 허락 없이 멎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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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난 그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너무 어두운 구석에 감춰 두어서
고통조차 쉽게 닿을 수 없던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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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의도 없이
그가 그 장면을 꺼냈다.
멀고도 가벼운 이야기를 하던 중,
그때 일에 대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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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내 몸이 모든 걸 기억해냈다.
차가운 인도,
입김이 서리던 공기,
하루의 빛 속에 증발하던 약속.
답답함.
가슴을 누르던 압박감.
길 한가운데서
숨조차 쉴 수 없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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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흐릿하게,
김 서린 유리창 너머에서처럼.
그러다 선명하게.
너무나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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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침.
그 작별.
뒤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던 차.
내가 그를 찾아갔다.
그를 향해 나아갔다.
내 전부로,
모든 말과 걸음으로,
목구멍까지 차오른 심장으로.
그리고 그는,
곁에 있겠노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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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부드러운 눈빛으로.
따뜻한 손으로.
오직 나에게만 쓰던 목소리로.
그렇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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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침이 되자…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변해 있었다.
빛이 있었고,
거리가 있었고,
우리 사이엔 낯선 침묵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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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언가를 말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경계에 대해,
지속의 어려움에 대해,
아무도 모르게 무너지는 것들에 대해 말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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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들었지만,
그가 어디에서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심장 어느 지점에서
그 낯선 목소리가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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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무거워졌다.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처럼.
그런데도, 나는 해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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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앞을 걸었고
나는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무엇이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늦게 닿았다.
그는 이미 다른 시간에 있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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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한다.
무언가가
영원히 사라지고 있음을
사람은 정확히 알게 되는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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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소리.
닫히는 문.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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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12월이었다.
차가운 공기.
입김.
피부 위에 얼어붙은 눈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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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있었다.
도로 옆 인도 위에서.
추위와 슬픔이 뒤섞인 채.
분리되지 않는 감각으로 몸 안을 채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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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 있었다.
그의 흔적이 아직 숨 쉬던
그 유령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가 미안해하길.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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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속삭임처럼,
아무 증인도 필요 없는 문장처럼.
그리고 그때, 나는 알았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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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발은 움직였지만,
나는 그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걸었다.
거리는 흐릿했고,
불빛은 멀었고,
사람들에겐 얼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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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그곳에 있었다.
대학교 앞의 한 카페.
2층.
창가에 앉아
뜨거운 컵을 두 손에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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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걷고,
세상이 도는 걸 바라봤다.
생각은 없었다.
느낌만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엔
이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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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창밖을 바라보던 그 순간.
식어버린 커피.
나 없이 계속 도는 도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질문들이 찾아왔다.
전날 밤,
그가 나를 그렇게 다정히 바라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나를 그 차에 태우게 뒀을까,
무언가 아직 남아 있는 듯한 표정으로?
왜 날 날게 한 다음,
더 높은 곳에서 밀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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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는…
내가 마음을 열고 도착했던 날을 기억했고,
이제는 조용히 떠나는 날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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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는,
가장 아름다웠던 날들을 내게 주었고,
가장 아픈 날들을 하나씩 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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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말없이 바라봤다.
마치 도시를 바라보는 일만으로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것처럼.
— Ha Eun Ma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