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사랑으로는 부족했을까
이 사랑은 나를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했다.
그는 단지,
내가 영혼까지 내어주며 기다렸던 그 깊이까지
나를 만나러 올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이토록 깊이,
이토록 격렬하게,
마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나를 태워버리는 불길처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뎌졌으면 좋겠어.
그가 더 이상 내 생각 속에, 내 밤과 낮의 고요 속에 살지 않았으면.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해.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
위로도, 존재도, 작은 약속의 그림자조차도.
그저 나를 더 깊이 끌어내릴 뿐이야.
그런데도 여기 있어.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어.
마치 그게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가끔은 이게 정말 사랑이 맞는지 묻고 싶어.
이 끊임없는 찢김, 말 없는 기다림,
돌아오지 않는 헌신이…
정말 사랑일까?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지만,
내 사랑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인정해주는 이도, 이해해주는 이도 없어.
나조차도 그래.
그 평범한 금요일 밤의 어떤 남자,
그에게 왜 그렇게 깊이 이끌렸을까?
나를 들여다보려 했지만, 끝내 알아보지 못했다.
특별히 다르진 않았어.
적당히 잘생겼고,
짙은 머리칼, 짙은 눈동자, 햇볕에 그을린 피부, 완벽한 미소.
예의 바르고, 차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
흔한 사람이었어.
그런데도 뭔가…
내 안의 무언가가 그의 존재에 반응했어.
마치 예전부터 사랑해왔던 사람처럼.
내 영혼이 알아보고 속삭인 것 같았어.
“저 사람이야. 너를 무너뜨릴 시작.”
때때로 나는 마법에 걸린 것 같아.
아주 잔인한 마법.
아니, 저주받은 걸지도 몰라.
돌아올 수 없는 사랑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미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에게,
나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미쳐 사랑하도록…
⸻
어렸을 때부터 쉽게 사랑에 빠졌어.
하지만 첫 연애는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시작됐어.
나는 모든 걸 원했어.
영화처럼, 편지 쓰고, 꽃을 주고, 손을 잡고 걷고…
이제 나도 그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나는 모든 걸 원했어.
유치하고, 사랑스럽고, 영화에서 보던 그런 사랑을.
내가 꿈꾸던 따뜻한 장면들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어.
하지만 내가 함께한 사람은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는 스물여덟.
차갑고, 진지한 사람이었어.
내 사랑의 표현을 유치하다고 했고,
내 장난이나 말투에 자주 화를 냈어.
나는 그저 따뜻함을 원했을 뿐인데
그는 늘 냉소로 되돌려줬지.
어느 날, 그의 휴대폰에서 다른 여자들과의 메시지를 발견했어.
손이 떨렸고, 숨이 가빠왔어.
물었고, 용서했고,
그는 또 그랬고, 나는 또 용서했어.
그러다 결국 그는 떠났어.
몇 년 뒤, 다시 찾아왔어.
사과했고, 후회한다고 말했어.
⸻
그 후에도 몇 명의 남자가 더 있었지.
짧고 흐릿했던 관계들.
결국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 사람들.
한 사람은
“절친한 여자 사람 친구”에게 새벽 세 시에 전화를 받고
그녀는 그의 집에서 자고 갔지만
나는 “룸메이트 때문에 안 된다”며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어.
또 한 사람은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뒤로 미뤘고,
우리가 끝난 지 한 달 만에
새 연애를 시작했지.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걸지도.
몰라.
더는 묻고 싶지 않았어.
⸻
그리고, 네가 왔어.
다른 사람처럼 보였던 너.
사랑한다고 말해줬고,
내 얘기를 들어줬고,
나를 웃게 만들었고,
함께하자고 약속했지.
이번엔 진짜라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어.
나는 믿었어.
산산조각 난 순수함으로,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직 남아있던 희망으로.
그는 달라 보였어.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웃게 해주고,
내가 아픈 날이면 조용히 손을 잡아줬어.
그렇게 말했지.
“이번엔 진짜야.”
“나는 떠나지 않을게.”
그게 얼마나 오래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그는 몰랐을 거야.
그런데, 어느 날
너는 그냥 떠났어.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길 한복판에 나를 홀로 남겨두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어.
우리가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이
아무 의미 없었던 것처럼.
나는 쓰레기처럼 버려졌어.
너는 돌아오지 않았고,
작별 인사도, 눈물도, 죄책감도, 마지막 눈빛도 없었어.
남겨진 건
네가 멀어져가는 뒷모습과,
가슴 깊이 꽂힌 너의 부재뿐.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였어.
하루아침에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 보는 것.
사랑의 흔적은 날카롭고, 보이지 않는다.
비유가 아니야.
진짜야.
⸻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신뢰하는 방법을 잊었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여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언젠가 너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
언젠가 너를 떠올려도 아프지 않을까?
나는 다시
이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을 느끼며 사는 내가 치러야 할 대가일지도.
아니면,
나는 그저
사랑을 너무 많이 해버리는 여자일 뿐일지도 몰라.
그리고 매일 밤 고요한 어둠 속에서
혼자 묻는다.
왜, 그 사랑으로는 부족했을까.
—Ha Eun Ma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