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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빵작가 May 23. 2022

사랑은 예쁨의 발견

언젠가 공을 들여 '愛'를 쓰고 있는 할멈에게 엄마가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中]


'사랑은 예쁨의 발견'

내 SNS 프로필에 지금까지 가장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한 문구이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의 정의에 대해 물으면 선뜻 말하지 못했는데, 이 문장을 만난 이후 망설이지 않고 얘기한다. 이 다섯 글자만큼 명료하게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작가의 통찰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들었을 때를 되돌아보면 그의 예쁨이 나에게 와닿았을 때다.

남편과 연애할 때는 그가 나에게 배려하는 예쁜 마음을 발견했을 때 사랑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나와 만났을 때 꼬물거리며 엄마 젖을 찾는 가냘프고 귀여운 몸짓에 모성애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년 넘게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친구들 역시 내가 그들을 사랑하게 된 건 바로

그들의 예쁜 마음과 행동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다.


곁에 있는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작가의 말처럼 그의 예쁨을 '발견'해보자!




그러나 애석하게도 평범한 우리의 눈으로 모든 이의 예쁨을 발견할 수는 없다. 내가 그들을 보는 시선의 문제인지, 혹은 유독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예쁨이 발견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발견'이라는 단어는 미처 찾아내지 못하거나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사람의 어딘가에는 예쁨이 숨겨져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예쁨이라는 DNA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도무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멀어져 있는 거리를 좁혀보려고 노력도 해보았고, 내 성격의 문제가 아닐까 몇 날 며칠을 반성하며 자책도 해보았다. 어떤 때는 그와의 첫 만남이 좀 달랐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런 이들과는 어떻게 만났어도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우리의 관계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것을.


수십 년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치고 뒹굴어보니 애초에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바람은 나의 이상이고 착각이었다. 그 후 나는 조금은 편한 나름의 방법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내가 평생을 인연으로 가져가고 싶은 이들에게는 관계 유지를 위해 에너지와 노력을 아낌없이 쏟지만, 현재 나의 일상과 관계한 것 외에 크게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잘 맞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기로 말이다.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들로부터 이런 고민을 들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면 그들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너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은 너에게 어떤 사람이니?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야?  

아니라면 그냥 지나가는 인연으로 스쳐 지나가게,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둬. 네가 지켜야 하는 예의는 꼭 갖추고, 해야 하는 역할은 최선을 다 해. 그 사람과는 거기까지. 억지로 없는 예쁨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말고, 관계의 탓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책하지도 말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일 뿐이니 네 인생에서 잘 지나갈 수 있게 내버려 두자.'  


지금 당신 앞에 있는 그의 예쁨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면?

억지로 찾으려 애쓰지 말고 스스로 자책하며 괴로워하지 말고 당신의 인생에서 잘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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