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Jun 21. 2019

밝은 밤이 주는 혼란

에코 이야기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혼자 가는 여행은 참 갈 때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내 인생에 혼자 떠나는 여행만큼 도움이 되는 것을 또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이자 동시에 배움의 기회이다. 잠깐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버린다는 행동 자체가 주는 위안은 강력하다. 비우는 만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여행을 잘 왔다고 안도하고 보통의 일상도 달라진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마저 삶의 여유가 너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올해 새롭게 느낀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노래하던 어느 날, 우연히 온 경복궁 야간개장 방문의 기회는 마치 꿈같았다.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삼각대와 카메라를 싸 들고 제일 좋아하는 생활한복을 입고 달려간 그곳에는 새로운 의문점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복궁 경회루 © 에코


내가 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다른 사람에게도, 다른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음을.


서울에는 경복궁을 비롯해 5개의 궁궐이 있다. 흔히들 5대 궁이라고 하는데, 만들어진 순서대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경희궁이 있다. 고궁 야간개장은 고궁들을 야간에도 개장하는 것을 말한다. 해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른데, 내가 방문한 경복궁의 예를 들어보겠다. 올해 경복궁은 하루 4500명의 인원을 수용하면서 4월 27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야간개장을 진행한다. 내가 방문한 날을 포함하는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는 궁중문화축전 기간으로 경회루에서 레이저쇼를 동반한 축제를 진행했다. 하루 3000원의 관람료가 있으며 한복을 입는 경우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 외국인 외 현장 구매 불가이므로 일반인 및 한복 착용자는 사전 예매가 필수다.


궁중문화축전의 레이저 쇼 중 일부 ©에코


고궁은 자연 친화적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고궁은 현대인에게 잘 정돈된 아름다움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나에게 좋은 공간은 남에게도 좋고 더 나아가 야생동물에게도 좋다. 고궁에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서울에도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도 녹지의 비율이 높거나 녹지와 가까운 고궁에서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녹지가 많다는 것은 둥지나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를 만들 수 있고 벌레나 식물들 같은 먹이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아는 너구리와 같은 야행성의 포유류나 다양한 산림성 조류들, 이외에도 많은 곤충들이 살고 있다.



궁중문화축전의 레이저 쇼 중 일부 ©에코


밤에 고궁의 불을 환하게 켜고 음악을 틀고 축제를 벌이는 동안 이런 야생동물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매일같이 드나들던 집 앞을 막고서 갑자기 예고되지 않은 시끄러운 공사를 진행한다면 우리는 당황할 것이고 돌아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을 때 건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신이 다니던 길목이 막혔다고, 시끄럽다고 우리에게 직접 항의할 수 없다. 가장 날이 좋던 기간에 개방하는 야간개장은 일 년에 몇 번 안 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즐기기 좋은 날씨는 야생동물의 번식기이거나 먹이를 구하기 좋은 시기와도 겹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밝은 밤이 주는 혼돈


특히 상시 관람이 허용된 곳은 매일 밤 켜지는 불 때문에 더 많은 문제를 지니게 된다. 지나친 인공조명으로 인한 공해, 즉 인공조명이 너무 밝거나 지나치게 많아 야간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빛공해라고 한다.  빛공해는 사람의 건강한 삶에도 영향을 주지만 야생동물들에게 끼치는 피해는 생각보다 더 다양하고 그중에서도 야생동물들의 생활사에 주는 영향들에 대한 연구들도 많이 진행되었다.


©티브

살면서 한 번쯤은 새들의 새벽 합창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다 보면 새들이 나보다 더 먼저 일어나서 바쁘게 울고 있다. 새들이 새벽에 우는 이유는 소리의 전달력이 좋고, 먹이를 찾기에 충분히 밝지 않으며, 야간동안 세력권의 공백 발생에 대비해 새로운 세력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해가 져있는 밤부터 해가 뜰 때까지의 급격한 기온 변화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방을 저장하며 남은 지방을 소모하기 위해서 새벽에 노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중에서도 태양빛은 야생조류 새벽 지저귐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요인이라고 한다. 번식기의 초기에는 새들이 새벽 합창을 일출보다 앞서 시작을 하는데, 빛공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더욱더 앞서 시작을 하게 되고, 이는 새들에게 혼란을 주어 번식기의 암컷이 미성숙한 수컷과도 교미를 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번식기에만 새벽 합창이 빨라져야 하는데, 빛공해로 인하여 새벽 합창이 빨라지게 되면, 번식기로 착각하여 번식을 일찍 시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새들의 육추(새끼 돌보기)에 필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벌레가 나오는 시기와 달라져 새끼의 먹이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먹이를 물고 있는 멧새 ©에코

새들은 작은 빛으로도 그 빛을 감지하여 소리를 내며, 도시화의 문제인 빛 공해 때문에 빛에 노출되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먹이활동 시간도 늘어나며, 종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야행성 포식자에게 노출의 위험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야간에 하는 행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야간 고궁 개장과 같은 행사는 특히나 고궁이라는 공간이 자연적으로 잘 꾸며져 녹지가 많아 야생의 새들이 그 속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새들의 이러한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사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비단 고궁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6년 미국의 관측 위성 '수오미 NPP'가 야간에 지구를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국제 공동연구진이 세계의 빛 공해 정도를 측정했는데, 그 결과 전 세계 80% 이상이 빛 공해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한국의 경우 빛 공해 면적 비율이 89.4%로 이탈리아의 90.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서울의 흔한 야경 ©에코



빛공해는 인간 및 야생동물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따라 환경부는 빛공해를 줄이기 위해 5년마다 빛공해 방지 종합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시행한 ‘제2차 빛공해 방지 종합계획’에는 과도한 빛을 발생하는 광고조명이나 미디어 파사드 (건물벽을 스크린으로 꾸미는 것) 등 새로운 조명기술에 대한 빛공해 관리 지침서 등을 마련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도 다양한 빛공해 저감 R&D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조명기구에 대한 시민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활 시험 기반의 빛공해 실증단지를 구축하여 빛공해를 막기 위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즉, 모두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줄여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궁과 현대식 건물의 공존처럼 우리도 동물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에코


고궁으로 밤나들이를 떠날 때, 서울의 야경을 볼 때 등 아름다운 모습으로 위안을 받는 행위는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이 다른 존재의 살아갈 권리를 빼앗아서 쌓인다면 과연 나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또 하나를 알아버려서 행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잃었지만 이 배움으로 인해 진실로 행복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Copyright©2019 에코,크리,에이,티브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대학원 브릿지 과목인 <에코크리에이티브> 수업의 최종 과제물임을 밝힙니다."




출처

경복궁 홈페이지 http://www.royalpalace.go.kr/content/board/view.asp?seq=590&page=&c1=&c2=

 (Kacelnik and Krebs, 1983).

(Staicer et al., 1996).

 (Holmes and Dirks, 1978; Thomas et al., 2002).

(Freeman, 1981; King, 1966; Molenaar et al, 1997)

한국의 빛공해 https://science.ytn.co.kr/program/program_view.php?s_mcd=0082&s_hcd=0018&key=201902251700255157

유방암까지 유발하는 빛공해를 줄이는 방법은?|작성자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매거진의 이전글 사는 게 니나노 (Need Not to Kno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