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 물축제 ‘세미누드촬영대회’ 반대 피켓팅 후기
2019년 7월 27일 장흥군에서 개최한 ‘정남진물축제’의 한켠에서 ‘세미누드촬영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친구들은 급히 전날 피켓을 만들고 당일 세미누드 촬영지에 찾아가 촬영대회반대 피켓팅을 펼쳤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촬영장소에는 이미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있었고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세미누드’라는 이름을 걸었으니 그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드는 정도의 노출일거라 예상했으나 모델들은 전라(全裸)의 몸으로 높은 곳이나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처참한 기분을 느꼈다. 현장은, 그 벗은 몸과 그것을 찍는 모습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모델 4명은 전부 여성이었으며 사진가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모델을 보는 그들의 유희적 시선이 끔찍했다. 그 시선으로, 물축체를 즐기며 흠뻑 젖어있는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아닐까. 그곳에 있는 내내 나는 이 시간 이후를 걱정하며 터져 나오는 분노를 삭여야 했다. 비가 오던 그날만큼은 물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피켓을 들고 입장했을 때 우리들을 본 모델의 놀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 모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애써 의연한 표정을 보이며 우리들을 피하던 사진가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역력했다. 어떤 이는 우리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고, 또 누군가는 ‘예술도 모르는 것들이 똥 오줌을 못가린다’며 욕지기를 해댔다. 우리의 핸드폰을 무력으로 갈취하던 사람들과 친구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뜯어내다시피 벗겨버렸던 사람. 그들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공식적으로 허가 받은 거라고!”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외쳤다. 감정을 누르고 있던 나는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렸다. “공식적으로 허가받으면 다 해도 됩니까!?” 소리를 질렀다. 그는 발끈했고 내게 다가오려다 지인들의 만류로 소리만 들려왔다. ‘어른에게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피켓을 들고 자리를 이동하는 내내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두려움과 분노가 몸 안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적어도 이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나아가 이 대회의 속살을 장흥 군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민들은 이 대회가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을 촬영하는 것’정도로만 추측하고 있을 수 있다. ‘물축체’에서 수영복을 입고 노는 걸 찍는 건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기에 더 알려야했다. 여성이 홀딱 벗은 몸을 찍는 대회고 심지어 그 대회에서 군수의 이름을 건 상장과 상금까지 준다는 것을 알면 분명 군민들은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흥군이 대회이름을 ‘세미누드’로 선택한 이유도 그런 추측을 유도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에 기대어 적당한 눈가림이 가능한 단어였다. 올누드도 아닌 세미누드고, 한국사람의 인식에 세미누드는 수영복 정도의 수준이라는 유추는 어렵지 않다. 그렇게 십수년 ‘세미누드사진대회’가 장흥군에서 버젓이 용인되어왔으니 군민들의 인식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시에서 지낼 때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불법사이트에서 유통되는 음란물에 대한 것도,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의 전라((全裸)도 사회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재인식되고 성적 대상화되는지에 대해 이해시키는 일이 고단했던 경험이 많다. 개인의 자유, 예술성에 대한 방대하고 다양한 논쟁이 아닌, 대부분 특수한 경험이나 자기방어로 똘똘 뭉친 빈약한 논리에 일일이 대적하기 피곤했던 것이다. 그날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예술’이다. 그들은 스스로 예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현장에서 예술이 무엇이냐 같은 피곤한 말싸움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군민들의 세금으로 치러지는 ‘그들만의 예술’인 것만으로 이미 문제다. 군민 누구도 그것을 허락한 적 없으며 군민의 의견을 무력으로 대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건현장이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해 논쟁하고 싶은 모양인지 내게 무섭게 소리치며 예술을 운운하는 그에게 “피사체와 배경, 소품 심지어 포즈까지 작가가 선택하지 못하는 게 예술입니까?”라고 맞받아쳤다. 만일 누군가, 애지중지 들고 있던 무겁고 긴 고급 렌즈와 카메라가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면 말문이 막혔을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는 없었다. ‘불평등한 노출은 거의 언제나 불평등한 권력의 표현이다. 현대 교도소에서도 옷을 입은 간수 앞에서 남성 죄수의 옷을 벗기고, 남북전쟁 전의 남부에서는 젊은 흑인 남성의 노예가 벌거벗고 옷을 입은 백인 주인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여성은 일상적으로 벌거벗고 남성은 그렇지 않은 문화에서 살면 사소한 방식으로 하루 종일 불평등을 배우게 된다. - 나오미 울프,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중 돈과 지위가 권력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하려고 노력하려면 우리의 권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피켓에 적힌 것 중에 ‘벗기고 있네’라는 문구가 있다. 우리는 이 대회에서 ‘벗기고 있는 자’가 누군가 알고 있었다. 벗기는 장을 기획하고 만든 자, 벗기는 장에 돈을 지불한 자, 벗기는 장에 참여한 자, 벗기는 장을 관람한 자, 벗기는 장을 모른 척한 자 그리고 전혀 모르는 자. 우리는 언제든 벗기는 자가 될 수 있고, 벗겨지는 자가 될 수 있다. 글. 해와 덧. 장흥에서 처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날이었네요. 그곳으로 나서기 전 며칠간 저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피켓팅은 언제나 두렵고, 누군가의 큰소리나 무력앞에서는 늘 몸이 떨려요. 그건 제가 참 싫어하는 저의 상태거든요.더구나 가르쳐주고 싶은 오만함과 내 의견을 알리고 싶은 염원이 엉망으로 섞인 마음. 피켓을 들고 있는 나는 이 마음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라기보다 페미니st를 흉내내고 있는 거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낄때가 있어요. 철학은 거창하지 않지만 감정이 거대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성에 대한 문제들이 또다시 저를 움직이게 했네요.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지만 내년에도 하게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우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