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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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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Jul 23. 2020

일단, 모여보자

장흥에서 만난 행운같은 인연들 ‘일단, 모임’

전남 장흥에는 ‘백수라는 키워드로 뭉친 청년 모임이 있다. 2019 여름,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아남기>라는 책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항상 공부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는 사회적, 공동체적 분위기, 어떤 가치관이나 철학적 고민을 요구하는 모든 귀찮은 압박에서 조금 벗어나있고 싶었다. 때문에 참석할지 말지 망설이다  기대 없이 참석해보기로 했다.

모임이 시작되고 우리는 소개를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수에 대한 생각은 다들 비슷했고, 우리는 우리가 피해  도시에서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직 몸에  삶의 방식과 사고의 패턴을 변화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백수로 살더라도 떳떳할  있게 지지대가 되어  동지들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대와는 달리 기분 좋은 결속을 느낄  있었다.

우리는 첫모임   모임마다 각자 돌아가며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제안 하는 것으로 모임의 정체성을 정했다. 초기멤버는 5명으로 이루어졌고 누구든 함께   있는 모임이었다. 그날 ‘일단, 모임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이름은  모임에  가지 주제만을 정해놓지 않겠다는 다짐 같기도 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함께 했다.  때문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전원이 모임의 주체가   있었다.

우리는  모임마다 이끄미와 후기담당을 정했다. 이끄미는 그날 주제를 제안한 사람이고, 후기담당은 이끄미와 겹치지 않도록 했다. 우리가 했던 활동이 짧은 글과  장의 사진으로 ‘일단, 모임비공개 밴드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모임 외에도 각자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1회를 스스로 정해 밴드에 올리며 개인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일단, 모임안에서 강력하게 결속된  팀이자, 주체성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이었다.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일은 근황토크가 전부일 때도 있었다. 각자의 고민을 이야기하다보면  달에  , 겨우  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함께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가는  몰랐다. 영화를 보며 함께 감동에 젖기도 하고, 여수와 순천 등지에 살면서도 ‘여순항쟁 대해 너무 아는  없다며 유적지를 탐방하기도 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부지런히 추억을 만들었고 어느덧 1년이 지나있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라면서 저마다 사회에 대한 울분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때때로 가볍게 던지는 농담 한마디에 깊은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다. 너무 자주 튀어나와서 제어하기 힘든 방어기제는 스스로를 점점 나약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런 우리들이 만나서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또 조심하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장흥에서 만난 모든 인연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 ‘일단, 모임’의 역할은 매우 컸다. 나는 점점 저마다 삶의 방식이 아름답고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닮고 싶고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가벼움이 가져다주는 편안함, 편안함이 불러오는 여유와 진솔함, 이것이 막막한 일상에 매우 중요한 키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감히 단언해본다. ‘일단, 모임’같은 모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약간의 희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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