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스토리]
"너는 왜 너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아?"
- 내가? 난 충분히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궁금증이 솔직히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나의 일상을 묻는 너에게 나는 곤란한 적이 많았다. 대충 둘러대는 것도 버거웠다. 나는 너에게 작은 거짓말 하나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일상을 네게 일일이 보고하는 것도 별로였다. 그저 내 일상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어떤 행위들일 뿐이었으니까. 그 안에서 뭔가 짜릿하게 느꼈다면 너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없는 아주 사소한 행위들을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랬다. 나의 무의미한 무언가를 너와 공유하는 일은 조금 귀찮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너는 나의 의미있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의미있는 것들을 무의미한 것들과 섞어놓고 싶지 않았다.
너는 나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이 큰 의미라고 내게 말했다. 내가 오늘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나의 발걸음을 하나하나 상상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상상되지 않는 나의 모든 것이 너에 대한 사랑까지 의심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너는 도대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일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 시절 그저 싫은 기분으로만 그 시간 너를 대한 것을, 그 시간들이 내게 스트레스였다는 걸 네게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나는 그저 그 순간을 조금 참는 것으로 그 기분을 무시했다. 그게 결국 너에 대한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예감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날 나는 내 앞에서 내쉬는 너의 깊은 한숨을 들었다. 내가 포착한 것은 네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 한숨을 듣고 내가 강하게 느낀 첫감정이었다. 마음은 '답답해? 네가? 나만큼 답답하냐? 진짜 답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짜증이 잔뜩 섞여 그 한숨의 원인도 파악하지 않으려는 듯이 너에게 쏘아붙였다. "한숨쉬었냐?" 너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늘 있는 일이라는 듯이 감정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의 한숨이 또 들려올까봐. 그래서 너를 미워하는 마음이 붙잡을 틈도없이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그 공간을 벗어났다. 너는 나를 잡지 않았고, 나도 네가 붙잡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정말 네가 붙잡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때,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다루는 일이 서툴다는 것을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해석하려들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 경험들은 확신이, 진실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그런 능력을 강력하게 신뢰해왔다. 단지 네가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사람이고, 내게 깨우침을 줄 수 없는 정도의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그 결론은 너는 내 짝이 아니다, 너는 아직 멀었다였다. 나를 알아 줄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미움이 남아있던 그 시간들을 지내면서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1~2주정도였으니까. 미움이 사라지니 너를 사랑했던 이유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에 너에 대한 사랑이 채워져 갈 때쯤 나는 또 기분대로 너를 대했다. 너는 전혀 좋아해주지 않았다. 너는 나와 만나면서 힘들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말해주고는 떠났다. 그 순간 또다시 너를 미워하는 감정이 솟아올랐지만 이내 놔버렸다.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는 정말 서로에게 아무말도 못했던 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씩이라도 말해봤다면 훨씬 나았을 일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너에게 설명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는 일들도 있었지만 지금보다는 더 좋은 이별이었을 것이다.
너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사람이었다. 네가 있었던 삶과 네가 없는 삶을 비교해보면 네가 친구로라도 곁에 있는 쪽이 백번 나았다. 너는 나의 어느 부분을 깊이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너와 사랑했던 시간이 우리 사이에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너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친구로라도 지내자는 내 말에 '너에게서 멀어지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통화를 끊고 나서야 정말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또다시 아프게 깨달았다. 나는 너에 대해서도 몰랐지만,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몰랐으며 심지어 나에 대해서도 몰랐다.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은 정처없이 흘러갔다. 내가 알고 있던 나를 모조리 의심하는 일, 내가 가진 서툰 점을 인정하는 일, 그걸 관계에서 풀어내는 그 모든 일이 오로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졌다. 이건 너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네가 알게 된다면 너는 분명히 스스로를 탓하며 걱정할 것이다. 나는 네가 알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이제 네가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너와 친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기 때문에 그리고 네가 내게 알려준 이 모든 과정을 열심히 겪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오로지 나밖에 없는 이 시간을 지켜야만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이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거라는 설명을 너에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설명해도 너는 걱정이 앞서 나를 타이를것이다. 나는 살기위해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라고 절대 죽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한들 너는 돕고 싶어할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적어야 했다. 나는 괜찮다고, 무조건 괜찮다고. 그나저나 당신 걱정이나 하라고 생각보다 마음이 훨씬 더 빨리 나아가는 것일 뿐이니 좌절이 와도 견뎌내라고. 당신은 결국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거라고. 나와 달라서, 나와는 다르게 세상을 바꿔낼 당신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이다.